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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기록(사료)으로 보는 고려 거란 전쟁 18] 귀주 대첩에 고려와 거란의 중장기병이 참전했는가?(feat. 김종현 부대) [내부링크]

들어가며 귀주 대첩을 다룬 일부 책과 웹상에서는 병마판관 김종현이 이끄는 1만명의 부대가 중장기병이라고 하는 경우가 있다.* * 김후, <활이 바꾼 세계사> (서울 : 가람기획, 2002), 147쪽 하지만 안타깝게도 <고려사>에서 이러한 주장의 근거는 찾을 수 없다. 김종현의 부대가 어떻게 구성되었는지도 알 수가 없다. 김종현의 부대가 중장기병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귀주 대첩에 고려와 거란의 중장기병이 참전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양측 군대에 중장기병이 편성되어 있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고려의 중장기병 고구려를 비롯한 삼국이 중장기병을 운용했음은 고구려 고분벽화와 유물로서 알 수 있다. 고려 시대에는 벽화와 갑옷과 같은 유물이 남아 있지는 않다. 하지만 고려 시대에도 중장기병이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기록은 있다. 고구려 중장기병 : 삼실총 벽화(왼쪽)과 약수리 고분벽화(오른쪽) 문종 때 이부상서를 거쳐 문하시중까지 역임한 왕총지(王寵之)는 문종 4년(1050)에 상소를 올려

[역사 기록(사료)으로 보는 고려 거란 전쟁 19] 제3차 전쟁의 전후 처리 : 현종의 책봉과 고려 거란 관계의 정상화 [내부링크]

들어가며 고려는 귀주에서 거란군을 대파했으나, 양국 사이의 힘의 균형이 바뀐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거란은 강국이었기에 적대적 관계를 지속하는 것은 고려로서는 부담이었다. 거란으로서도 1010년부터 1019년간 고려와 전쟁 상태를 지속했으나 귀주에서 완패를 당함으로써 더 이상 군사적으로 고려를 굴복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깨달았다. 양국 모두 외교 관계 정상화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고려사>에 따르면 거란이 먼저, <요사>에 따르면 고려가 먼저 사신을 보낸 것으로 나온다. <고려사>와 <요사> 모두 기록이 간소하기 때문에 어느 쪽이 맞는지는 알 수가 없다. 시간 순으로 양국 간의 교섭을 기술해 본다. 1019년의 교섭 귀주 대첩이 끝난 3개월 후인 1019년 5월 거란 중앙 정부가 아니라 동경에서 고려로 사신을 파견했다. 1019년 5월 12일(음) 무진일에 거란(契丹) 동경(東京)의 문적원소감(文籍院少監) 오장공(烏長公)이 와서 왕을 알현하였다. 戊辰 契丹東京文籍院少監烏

[역사 기록(사료)으로 보는 고려 거란 전쟁 20] 거란에 대한 사대관계를 어떻게 볼 것인가?(feat. 거란에게 농담하는 고려) [내부링크]

분명 고려는 전쟁에서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자발적으로 거란에게 사대관계를 맺었다. 하지만 그 사대관계는 후일 고려-몽골, 조선-명/청 사이의 관계와는 차원이 달랐다. 후자의 관계가 철저한 신속 관계였다면, 고려와 거란 관계는 거란의 우위를 인정하는 가운데 고려의 자율성이 유지되는 것이었다. 문종 때 송과의 외교 관계 재개가 고려의 자율성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조선시대 사대관계의 상징 : 만동묘(왼쪽)과 삼전도비(오른쪽) 거란에게 농담하냐고 조롱하는 고려 고려 거란 관계는 현종말부터 덕종 재위(1031~1034) 사이 동안에 다시 긴장 관계로 접어들었다. 주된 원인은 거란이 압록강을 건너 설치한 내원성과 보주성이었다. 고려 입장에서는 서희와 소손녕의 담판으로 압록강 동쪽은 고려 영토로 공인받았는데, 거란이 이를 무시하고 성을 쌓은 것이기에 돌려받을 필요가 있었다. 1031년 6월 25일 거란 성종이 사망하자 고려는 10월에 조문 겸 흥종(興宗) 즉위 축하 사절을 보냈다. 단순히 조문과

[프랑스 파리 여행 15] 프랑스 여행 마지막 날, 장 조레스(Jean Jaurès) 카페, 빵집 '빵빵(Pain Pain)', 사랑해 벽(Le Mur des Je t'aime) [내부링크]

프랑스 여행 마지막 아침 2023년 3월 7일에 시작한 프랑스 1달 여행도 마지막이 다가오고 있었다. 일어나 창문을 바라보니 저 멀리 에펠탑과 몽파르나스 타워가 보였다. 몽파르나스 타워(왼쪽)와 에펠탑(오른쪽) 에펠탑 풍경을 뒤로하고 아침 식사를 하러 갔다. 파리에서의 마지막 아침 식사였다. 아침 메뉴 1 아침 메뉴 2 에펠탑과 아침 식사 아침 식사를 마치고 언제나 그렇듯이 묵었던 호텔 방안 사진을 찍었다. 남는 것은 기록, 그중에서도 사진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에펠탑을 배경으로 호텔 방 열쇠 한 컷 거실과 침실 2박 3일의 짧은 기간이지만 정든 호텔 방과 작별 인사를 하고 체크아웃을 하러 내려갔다. 호텔에 맡길 캐리어가 4개였고 배낭이 1개였다. 잠시 보관을 맡길 캐리어 4개 한국을 떠날 때 캐리어가 4개였다. 그중에 2개는 네덜란드 사는 가족을 위한 선물과 생필품이었기 때문에 순수한 여행 캐리어는 2개인 셈이다. 툴루즈에 2개를 가져갔으나 보르도에서 3개가 되었고 파리에서 4개가

[프랑스 파리 여행 16] 샤를르 드골 공항(Aéroport de Paris-Charles de Gaulle) 제1터미널 그리고 귀국 [내부링크]

<사랑해 벽>을 마지막으로 1달간의 네덜란드와 프랑스 일정이 마무리되었다. 지하철을 타고 호텔로 돌아와 짐을 찾고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까지의 택시 요금 캐리어가 4개여서 택시로 이동하기로 했다. 샤를르 드골 공항과 파리 시내를 운행하는 택시는 정찰제로 운영되고 있다. 한국으로 따지면 강북인 우안(Rive droite)은 56유로, 강남인 좌안(Rive gauche)은 65유로이다. 샤를르 드골 공항에서의 택시 요금 참고로 오를리 공항(Aéroport Paris-Orly)에서 택시를 탈 때도 파리 시내는 정액 요금이다. 좌안이 36유로, 우안이 44유로이다. 오를리 공항에서의 택시 요금 공항 가는 길 몇 번 프랑스 여행을 했지만 파리에서 공항으로 이동하여 출국을 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주로 지방 도시에서 TGV를 타고 샤를르드골공항 TGV역으로 바로 와서 출국을 했기 때문이다. 택시를 타고 파리 교외로 나오니 파라 시내와는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서울 주변의 신도시와 비슷한 느낌이었

서거정(徐居正)이 본 고려와 조선의 차이 [내부링크]

조선 전기의 문장가이자 학자로 <동국통감(東國通鑑)>, <동문선(東文選)>, <경국대전(經國大典)>을 편찬한 서거정(徐居正, 1420∼1488)은 고려와 조선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김이수(金頤叟)*가 서사가(徐四佳)**와 문답을 나누다가 물었다. "고려시대의 시문은 말이 아름답고 기운이 풍부하나 체재(體裁)의 격식이 원숙하지 않고, 우리 왕조(조선)의 저작은 말이 자잘하고 기운은 약하나 내용은 주도면밀하니, 어느 쪽이 낫겠습니까?" 金頤叟嘗語徐四佳曰: “高麗諸子詞麗氣富, 而體格生疎; 我朝著述辭纖氣弱, 而義理精到, 孰優?” 서사가가 말했다. "호걸스러운 장수와 사나운 병졸이 창을 뽑아들고 방패를 앞세운 채 인의(仁義)를 담론하는 것과 진부한 유생과 속된 선비가 예복을 차려입고 차분히 예법을 행하는 것 중에 어느 쪽을 취하겠소?" 四佳曰: “豪將悍卒, 抽戈擁盾, 談說仁義, 腐儒俗士, 冠冕章甫, 從容禮法, 君將何取?” 홍만종(洪萬宗, 1643-1725, < 소화시평(小華詩

[프랑스 여행 후기 1] 여행 중에 만난 고마운 사람들 [내부링크]

한 달 동안 프랑스 여행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가끔 여행 후기를 보면 불친절한 사람을 만나거나 소매치기를 당하거나 심지어는 인종차별을 당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나 운이 좋게 소매치기를 당한 적도 없고 인종차별을 경험한 적도 없다. 만난 사람들도 모두 친철해서 편안하게 여행을 할 수 있었다. 오히려 과분한 도움을 받은 경우가 많았다. 그 중에서도 기억나는 3명의 이야기를 적어보고자 한다. 1. 툴루즈(Toulouse)행 비행기에서 만난 사람 암스테르담에서 툴루즈행 비행기를 탔을 때 우리 좌석 12라인 짐칸에 다른 사람의 짐이 있었다. 부득이하게 우리 가방을 우리 좌석 뒤쪽인 15라인 짐칸에 놓을 수 밖에 없었다. 툴루즈행 비행기 비행기가 툴루즈 공항에 착륙을 하자 가방을 꺼내려 15라인으로 갔다. 가방을 꺼내서 오는데 우리 뒷자리인 13라인에 있는 사람이 "안녕하세요" 라고 우리에게 인사를 했다. 깜짝 놀라 쳐다보니 한 프랑스인 중년 남자가 미소를 짓고 있었다.

프랑스 가정식 레스토랑 <르블란서(Le Blanseu)> [내부링크]

프랑스 여행을 다녀온 지 1년이 되니 다시 프랑스 음식이 생각이 났다. 가보지 않은 프랑스 식당을 찾다가 종로구 익선동에 프랑스 가정식을 하는 <르블란서>를 발견하게 되었다. 기본 정보 <르블란서>는 종로구 익선동에 있다. 종로 3가역 6번 출구로 나와 조금만 걸어가면 된다. 주소 : 서울시 종로구 익선동 170-1 영업 시간 : 12:00 ~ 22:00 (일요일은 21:30) 쉬는 시간 : 16:00 ~ 17:00 마지막 주문 시간 : 21:00 (일요일은 20 :30) 휴무일 : 매주 월요일 위치 외부와 내부 외부는 한옥을 개량한 모습이었다. 건물과 간판만 보고는 아담한 식당 규모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안에 들어가니 예상보다 넓었다. <르블란서> 외관 한옥의 천장이 드러낸 내부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테이블은 주로 2인석과 4인석이 많았는데, 그 배치된 모습이 프랑스 식당을 연상시켰다. 식당 내부 음식 양파 수프, 라따뚜이, 블루치즈 소스 홍합찜을 주문했다. 여기에 적포도

[프랑스 여행 후기 2] 파리 레스토랑 : 부이용(부용) 레퓌블리크(Bouillon République) [내부링크]

부이용(Bouillon)이란? 부이용은 프랑스 전통 요리를 상대적으로 저가에 제공하는 식당이다. 코스 요리를 30~40유로로 즐길 수 있다. 대신 식당 좌석은 매우 좁은 편이다. 원래 사전적으로 부이용은 고기와 생선, 야채를 넣은 국이나 육수를 의미한다. 부이용(출처 : 위키피디아) 국과 육수를 뜻하는 부이용은 19세기 중반에 레스토랑 이름이 되었다. 아돌프 밥티스트 뒤발(Adolphe-Baptiste Duval, 1811-1870)이 1854년 식당을 열면서 그 이름을 부이용으로 했다. 서민을 대상으로 고기와 부이용 수프를 제공하는 간단한 식당이었다. 그 이후로 부이용이란 이름의 식당이 많이 등장했다. 대표적인 것이 1896년 개업한 부이용 샤르티에(Bouillon Chartier)이다. 지금은 고기와 부이용이 아니라 다채로운 메뉴를 제공하고 있다. 현재 파리에 있는 대표적 부이용 식당은 아래와 같다. 부이용(Bouillon) 체인 - 부이용 피갈(Bouillon Pigalle),

[드라마] <퀸스 갬빗(Queen's Gambit)> 짧은 감상 [내부링크]

언제가 톨스토이(Tolstoy)가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는 선(善)을 추구했기 때문에 셰익스피어(Shakespeare) 보다 더 위대한 작가라고 주장했다는 내용을 본 적이 있다. 퀸스 갬빗은 톨스토이가 말한 선을 추구하는 드라마이다. 주인공을 비롯한 주변 인물들은 선하다. 주인공과 최종 대결을 벌이는 소련 체스 챔피언 또한 호탕한 사람으로 묘사된다. 선함과 거리가 먼 사람은 주인공의 친부로 추정되는 인물과 주인공의 양부이다. 하지만 이들 역시 악(惡)하기 보다는 찌질한 편에 가깝다. 통상 드라마나 영화는 선과 악을 대결시켜 극적 긴장감을 높이고 재미를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퀸스 갬빗은 악 없이 선만으로도 충분히 긴장감과 재미를 만들 수 있음을 보여준다. 톨스토이가 살아 있다면 이 드라마를 좋아했을 것이다.

[감상평] 넷플릭스, <뮌헨 - 전쟁의 문턱에서(Munich - The Edge of War)> : 유화 정책(Appeasment)에 대한 수정주의적 변호 [내부링크]

제2차 세계대전 초기에 영국 총리직에서 불명예스럽게 물러난 네빌 체임벌린(Neville Chamberlain, 1869~1940)은 죽기 며칠 전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나는 개인적인 평판에 대해서는 개의치 않는다. 뮌헨이 없었다면 1938년에 전쟁에서 지고 제국은 파멸했을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내가 받은 수많은 서한들이 의견 일치를 보고 있다. … 생존 가능성이 있다는 반대 견해는 생각하지 않는다. 지난 2년간의 진실한 내막이 출간되지 않더라도 나는 전혀 역사가의 판결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So far as my personal reputation is concerned, I am not in the least disturbed about it. The letters which I am still receiving in such vast quantities so unanimously dwell on the same point, namely without Munich the

[프랑스 여행 후기 3] 파리 레스토랑 : 르 플로랑탕(Le Florentin) [내부링크]

소개 르 플로랑탕은 파리 1구에 위치에 있는 식당이다. 식당 이름을 번역하자면 <피렌체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콩코드 광장(Place de la Concorde)에서 북쪽으로 조금만 올라가면 쉽게 찾을 수 있다. 관광지가 몰려 있는 곳에 있는 식당이지만 구글 평점은 좋은 편이다. 2024년 4월 14일 기준 4.5점의 평점을 받았다. 르 플로렁탕(Le Florentin) 위치 관광지에 있는 식당답게 홈페이지는 프랑스어, 영어 등 16개 국어로 되어 있다. 하지만 한국어도 가능하지만, 모든 내용이 한국어로 되어 있지는 않다. https://restaurantleflorentin.fr/ko RESTAURANT LE FLORENTIN 소개 Le Florentin, comme son nom l’indique vous attend dans la rue Saint-Florentin, dans le 1er arrondissement de Paris. Sous des lumières tamis

[프랑스 여행 후기 4] 파리 레스토랑(식당) : 라 프티트 페리구르딘(La Petite Périgourdine) [내부링크]

위치와 소개 라 프티트 페리구르딘(la Petite Périgourdine)은 우리가 묵었던 호텔 레지던스 앙리 4세(Hôtel Résidence Henri IV) 부근에 있는 브라스리(Brasserie)이다. 브라스리는 원래 양조장을 의미한다. 하지만 프랑스에서 주로 캐주얼한 식당을 의미한다. 라 프티트 페리구르딘 본점 참고로 프랑스 식당은 레스토랑(Restaurant) - 비스트로(Bistro) - 브라스리(Brasserie) - 카페(Café)의 4등급으로 대략적으로 나눌 수 있다. 레스토랑은 주로 정찬 요리를 하는 곳이고, 쉬는 날도 있고 브레이크 타임도 있다. 복장을 제대로 갖춰야 입장이 가능한 곳도 있다. 비스트로는 약간은 캐주얼한 레스토랑이라고 할 수 있다. 브라스리는 쉬는 시간 없이 매일 영업을 하는 식당이다. 카페는 주로 커피와 음료를 팔지만 간단한 음식을 팔기도 한다. 페리구르딘은 보르도 동쪽에 있는 페리고르(Perigord)에서 나온 말로, 페르고르 출신의, 페르

[역사 기록(사료)으로 보는 고려 군사 제도 6] 고려군의 전시 편제(1) : 3군(三軍)과 5군(五軍) [내부링크]

규정 상의 전시 체제 : 5군 고려 중앙군 2군 6위는 평시 편제였다. <고려사(高麗史)> '병지(兵志)'에 규정된 고려군의 전시 편제는 전군(前軍)·후군(後軍)·좌군(左軍)·우군(右軍)·중군(中軍)으로 구성된 5군(五軍)이었다. 5군(五軍). 중군(中軍)에는 병진도지유(兵陣都指諭)와 도장교(都將校), 5병도지유(五兵都指諭)와 장교도업사(將校都業師), 신기(神騎) 도령(都領)과 지유(指諭), 좌·우경궁(左·右梗弓) 도령과 지유, 좌·우정노(左·右精弩) 도령과 지유를 두었고, 신보(神步)·석투(石投)·대각(大角)·철수(鐵水)·발화(發火)·도탕(跳盪)·강노(剛弩)에도 또한 각각 도령과 지유를 두었다.전군(前軍)·후군(後軍)·좌군(左軍)·우군(右軍)에도 또한 각각 병진도지유, 신기·신보·정노 도령과 지유를 두었다. 五軍 中軍, 置兵陣都指諭, 及都將校, 五兵都指諭, 及將校都業師, 神騎都領, 及指諭, 左右梗弓都領, 及指諭, 左右精弩都領, 及指諭, 神步·石投·大角·鐵水·發火·跳盪·剛弩, 亦各置

[역사 기록(사료)으로 보는 고려 거란 전쟁 14] 제3차 전쟁 시 거란군의 편제 및 지휘관(소배압, 야율팔가, 소굴렬, 고청명) [내부링크]

거란 군사제도와 총병력 거란 군사제도 거란군은 황제 친위부대인 어장친군(禦帳親軍)과 호위부대인 궁기위군(宮衛騎軍)이 핵심을 이루고 있었다. 여기에 친왕과 대신이 거느린 대수령부족군(大首領部族軍), 부족 단위의 부대로 보이는 중부족군(衆部族軍), 지방군인 오경향정(五京鄉丁), 마지막으로 거란에 신속한 나라들로 이루어진 속국군(屬國軍)이 존재했다. 거란군의 평시 편제 어장친군은 가장 정예 부대였고 피실군(皮室軍)과 속산군(屬珊軍)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금강(金剛)을 의미하는 피실군은 황제 직속 부대였고 속산군은 황후의 직속 부대였다. 피실군은 거란인으로 구성된 반면, 속산군은 한인(漢人)과 번인(蕃人)에서 선발한 군대였다. 이렇게 황제와 황후의 직속 부대가 별도로 있는 이유는 거란이 황제 부족인 야율(耶律)씨와 황후 부족인 술룰(述律)*씨의 연합 국가였기 때문이다. * 나중에는 소(蕭)씨로 불린다. 피실군은 남피실군, 북피실군, 좌피실군, 우피실군, 황(黄)피실군으로 나누어졌다. 제2차

[역사 기록(사료)으로 보는 고려 거란 전쟁 15] 제3차 전쟁 시 고려군 편제 및 지휘관(강감찬, 강민첨, 김종현, 박종검, 유참, 조원) [내부링크]

고려군 편제 제3차 고려 거란 전쟁에서 고려군은 가장 큰 승리를 거두었으나 방어군이 어떻게 편제되었는지에 대한 자료는 부실하다. 상원수 강감찬, 부원수 강민첨이 20.8만명을 거누리고 영주(寧州 - 평안남도 안주)에 주둔했다는 기록이 전부이다. 이는 제2차 전쟁 시 행영도통사 강조 밑에 중군, 좌군, 우군 지휘관이 기재된 것과는 대비된다. 당시 강감찬(姜邯贊)은 서북면행영도통사(西北面行營都統使)가 되었는데, 왕은 그를 상원수(上元帥)로 임명하였고 대장군 강민첨(姜民瞻)을 부원수로 하였으며, 내사사인(內史舍人) 박종검(朴從儉)과 병부낭중(兵部郞中) 유참(柳參)을 판관(判官)으로 삼아 군사 208,300명을 거느리고 영주(寧州 - 평안남도 안주)에 주둔하게 하였다. 時邯贊爲西北面行營都統使, 王仍命爲上元帥, 大將軍姜民瞻副之, 內史舍人朴從儉·兵部郞中柳參爲判官, 帥兵二十萬八千三百, 屯寧州. <고려사> 권94, 강감찬 열전 야전군을 3군으로 편성하는 고려의 관행을 보면 강감찬이 지휘하는 방어군

[프랑스 파리 여행 14] 생트 샤펠(Sainte-Chapelle) [내부링크]

생트 샤펠(Sainte-Chapelle) 소개 생트 샤펠(Sainte-Chapelle)은 직역하자면 '성스러운 예배당'이다. 루이 9세(Louis IX, 1214~1270)가 1242~1248년에 걸쳐 만든 왕실 전용 예배당이다. 루이 9세는 중세의 가장 완벽한 기독교 군주로 칭송되는 국왕이며, 십자군 전쟁에 참여했다가 포로가 되기도 했다. 1297년 가톨릭 교회로부터 시성되었다. 이로 인해 성왕(聖王) 루이(Louis)로도 불린다. 루이 9세 - 출처 : 위키피디아 생트 샤펠은 루이 9세가 모은 예수의 고난과 관련된 유물을 보관하기 위해 만들어진 예배당이다. 그 유물에는 가시 면류관(Sainte Couronne), 예수가 지고 간 십자가 잔여물 등이 있는데 생트 샤펠에 보관된 유물 중 가장 유명한 것은 가시 면류관이었다. 가시면류관(왼쪽)과 가시면류관을 봉헌하는 루이 9세(오른쪽) - 출처 : 위키피디아 가시 면류관은 예루살렘에 있었으나 언제인가 동로마 제국의 수도인, 지금의 이스

[역사 기록(사료)으로 보는 고려 거란 전쟁 16] 제3차 고려 거란 전쟁 : 삼교천 전투, 자주 내구산 전투, 마탄 전투(강민첨, 조원, 김종현) [내부링크]

삼교천 전투(음력 1018년 12월 10일) 소배압이 이끄는 거란군은 압록강을 도하하였고 흥화진 인근에서 첫 전투가 벌어졌다. 소배압의 의도는 흥화진을 우회하는 것이었지만 흥화진을 감싸고도는 삼교천에서 고려군이 기습을 했다. 1018년 12월 10일(음) 무술일에 거란(契丹)의 소손녕(蕭遜寧)이 군대 10만을 이끌고 침입하자, 왕이 평장사(平章事) 강감찬(姜邯贊)을 상원수(上元帥)로 임명하고 대장군(大將軍) 강민첨(姜民瞻)이 보좌하게 하였다. 상원수의 군대가 흥화진(興化鎭)에 이르러 〈거란군을〉 크게 무찔렀다. 戊戌 契丹蕭遜寧以兵十萬來侵, 王以平章事姜邯贊爲上元帥, 大將軍姜民瞻副之. 帥兵至興化鎭, 大敗之 <고려사> 권4, 현종 9년 12월 무술 <고려사> 세가에는 무찔렀다는 기록만 나오지만, <강감찬 열전>에는 한 겨울에 수공을 펼쳤다는 믿기 힘든 드라마 같은 내용이 나온다. 흥화진(興化鎭)에 이르러 기병 12,000명을 뽑아 산골짜기에 매복시킨 후에, 큰 동아줄을 소가죽에 꿰어서 성

[역사 기록(사료)으로 보는 고려 거란 전쟁 17] 제3차 고려 거란 전쟁의 대회전, 귀주 대첩(강감찬, 강민첨, 김종현, 소배압, 야율팔가) [내부링크]

연주, 위주 전투 1019년 1월 3일 개경을 앞에 두고 거란군은 북쪽으로 철군을 시작했다. 철군 경로는 정확하게 기록에 남아 있지 않았지만 진군한 길을 다시 거슬러 올라갔을 것으로 추정된다. 후퇴하는 거란군을 강감찬이 이끄는 고려군이 기다리고 있었고, 개경을 구원하러 온 김종현의 고려군은 다시 방향을 북쪽으로 틀어 거란군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연주(평안남도 개천군)와 위주(평안북도 영변)에서 고려군이 거란군을 포착하여 기습 공격을 가했다. 1019년 1월 23일(음) 신사일에 거란(契丹)이 군사를 되돌려 연주(漣州-평안남도 개천)·위주(渭州- 평안북도 영변)에 이르니, 강감찬(姜邯贊) 등이 급습하여 500여 급의 머리를 베었다. 辛巳. 契丹回兵, 至漣渭州, 邯贊等掩擊, 斬五百餘級 <고려사절요> 권3, 현종 10년 1월 신사 전과는 500명 참살이지만 불과하지만 드디어 고려군은 철수하는 거란군 이동 경로를 파악하게 되었다. 최후의 결전, 귀주 대회전의 포진 귀주성 동쪽으로는 동문천이

[역사 기록(사료)으로 보는 고려 군사 제도 4] <고려도경(高麗圖經)>에 나오는 고려 중앙군 : 6군 편제 [내부링크]

들어가며 <고려사(高麗史)> 병지(兵志)에 따르면 고려 중앙군은 응양군(鷹揚軍), 용호군(龍虎軍), 좌우위(左右衛), 신호위(神虎衛), 흥위위(興威衛), 금오위(金吾衛), 천우위(千牛衛), 감문위(監門衛)의 2군(軍) 6위(衛) 체제였다. 하지만 인종 1년(1123)에 고려를 방문한 송나라 사신 서긍(徐兢, 1091∼1153)은 자신의 저서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에서 고려군 중앙군을 다른 모습으로 묘사하고 있다. <선화봉사고려도경>(왼쪽)과 <고려사 병지>, <고려도경> 번역본(오른쪽) 6군 체제 : 용호군, 신호군, 흥위군, 금오군, 천우군, 공학군 서긍은 고려 중앙군을 용호군(龍虎軍), 신호군(神虎軍), 흥위군(興威軍), 금오군(金吾軍), 천우군(千牛軍), 공학군(控鶴軍)의 6군 체제로 보고 있다. 고려 제도에서는 백성들은 16세 이상이면 군역(軍役)에 충당되는데, 6군(六軍)의 상위(上衞)는 항상 관부(官府)에 머무르며 나머지 군인들은 모두 토지를 지급받고 자신의

[역사 기록(사료)으로 보는 고려 거란 전쟁 13] 최후의 결전, 제3차 고려 거란 전쟁 준비 [내부링크]

고려 거란의 사이의 최후의 결전, 제3차 전쟁이 일어나는 1018년이 밝아왔다. 치열한 외교 교섭과 강동 6주를 둘러싼 무력 충돌이 일어나는 이전과는 다르게 1018년은 10월까지는 조용한 한 해였다. 고려 정부는 이 조용한 기간을 이용하여 전쟁으로 피해를 본 북계 지방을 복구하고 군사들에 대한 포상을 실시하여 사기를 진작하고자 했다. 거란도 반란을 일으킨 속국을 토벌하고 기근을 든 지역을 구휼하는 등 내부 정비에 주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고려의 전쟁 준비 북계에 대한 구휼 1014년 10월부터 1017년 8월까지 강동 6주 지역은 지속적인 거란 공격을 받았다. 이로 인해 땅은 황폐해져 주민들이 많은 고통을 받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최전선인 흥화진이 가장 피해를 많이 입었던 것 같다. 이에 고려 정부는 북계 지역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했다. 1018년 1월 미상(음) 〈현종(顯宗)〉 9년(1018) 정월, 흥화진(興化鎭)이 최근 전쟁 때문에 황폐해져 민(民)이 많이 추위와 굶주

[프랑스 파리 여행 13] 팔레 루아얄(Palais-Royal)과 라파예트 백화점(Galeries Lafayett) [내부링크]

팔레 루아얄(Palais-Royal) 간략한 소개 팔레 루야얄은 루이 13세(Louis XIII)의 재상이었던 리슐리외(Richelieu, 1585~1642) 추기경이 살던 저택이었다. 리슐리외 추기경이 살던 저택이라 당시에는 '추기경 궁전(Palais-Cardinal)'이라고 불렸다. 리슐리외 추기경 초상화(출처 : 위키피디아) 리슐리외 추기경이 사망한 후에 루이 13에게 기증되었으며, 루이 14세(Louis XIV)가 어렸을 때 모후인 안느 도트리슈(Anne d'Autriche)가 여기에서 잠깐 살아 이름이 팔레 루아얄로 바뀌게 되었다. 그 이후에는 부르봉(Bourbon) 왕가의 분파인 오를레앙(Orléans) 가문이 팔레-루아얄을 소유하게 되었다. 왕족임에도 프랑스 혁명을 지지하여 평등공 필리프(Philippe Égalité)으로 불린 루이-필리프(Louis-Philippe, 1747~1793) 오를레앙 공작이 여기를 대대적으로 개조했다. 정원을 둘러싸고 건물을 지어 상인들에게

[역사 기록(사료)으로 보는 고려 군사 제도 5] 보승(保勝)과 정용(精勇) [내부링크]

들어가며 고려 중앙군과 주진군, 주현군을 구성하는 주요 부대는 보승(保勝)과 정용(精勇)이다. 중앙군에는 보승 22령(領), 정용 16령(領)이 편성되어 있다. 북계와 동계 주진군에는 정용 696대(隊)가, 경기와 5도에도 보승군 8,601명, 정용군 19,754명이 편성되어 있다. 보승 및 정용 배치 현황 묘지명 등을 살펴 보면 고려 2군 6위 소속 고려 무장들은 자신의 직위 앞에 보승과 정용 등을 붙여 소속감을 드러냈다. 지정(至正) 27년 정미년(1367) 3월 일에 기록합니다. 시주는 봉선대부 전(前)흥위위 정용호군(奉善大夫 前興威衛 精勇 護軍) 박광미(朴光美), 취화군부인(吹火郡夫人) 임씨(林氏)입니다. 至正二十七年丁未三月日, 誌. 施主奉善大夫前興威衛精勇護軍朴光美, 吹火郡夫人林氏. 홍지금니 금강반야바라밀다경 사경 발문(紅紙金泥 金剛般若波羅蜜多經 寫經 跋文) 대안(大安) 3년 신미(1211)에 강종이 즉위하자[承寶圖] 또 조서를 내려 〈공을〉 전라주도 안찰사(全羅州道 按察使)

[역사 기록(사료)으로 보는 고려 거란 전쟁 15] 고려 중앙군(2군 6위)의 편제 [내부링크]

들어가며 지난 번 글에서는 고려군의 전체적인 모습과 병력을 살펴 보았다. 이번 글에서는 그 중에서도 2군 6위로 대표되는 고려 중앙군에 대해서 살펴 보겠다. https://blog.naver.com/french_75mm/223314323702 [역사 기록(사료)으로 보는 고려 거란 전쟁 9] <고려사(高麗史)>와 <고려도경(高麗圖經)>에 나오는 고려 군사력(병력 규모) 들어가며 고려는 한반도의 전근대 국가 규모에 비춰 경이로운 군대 동원력을 보여주었다. 태조 왕건이 일리... blog.naver.com 2군 6위의 구성과 병력 <고려사(高麗史)> 병지(兵志)에 따르면 고려 중앙군의 편제는 2군 6위였다. 2군은 응양군(鷹揚軍), 용호군(龍虎軍)으로 구성되어 있고, 6위는 좌우위(左右衛), 신호위(神虎衛), 흥위위(興威衛), 금오위(金吾衛), 천우위(千牛衛), 감문위(監門衛)로 구성되어 있다. 제도상으로 보면 고려의 2군 6위는 한(漢)나라의 남북군*의 2군 제도와 당(唐)나라의 12

[역사 기록(사료)으로 보는 고려 거란 전쟁 11] '현종의 친조'를 둘러싼 외교 교섭 [내부링크]

1011년(현종2년) 1월 29일(음) 거란군이 압록강을 넘어 철수하면서 제2차 고려 거란 전쟁은 막을 내렸다. 표면상으로는 '현종의 친조'를 약속으로 거란군이 철수한 것이기에 친조 문제가 양국 간의 현안으로 떠올랐다. 1012년 : 거란과의 관계 개선을 위한 고려의 사신 파견 개경으로 환도하고, 한편으로는 어느 정도 전후 처리가 되자 현종은 거란에 사신을 보냈다. 사유는 철군에 대한 감사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심정적으로는 당연히 사신을 보내고 싶지 않았겠지만 국력의 격차 때문에 현종으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사신을 보낼 때 점을 친 것을 보면 고려 정부가 얼마나 고심했는지를 알 수 있다. 1011년 4월 22일(음) 을축일에 공부낭중(工部郞中) 왕첨(王瞻)을 거란(契丹)에 보내 군대를 돌린 것을 사례하였다. 이에 앞서 왕이 거란에 사신을 보내려고 태사(太史)에 명하여 점을 쳤는데, ‘건지고(乾之蠱)’의 괘가 나오자 〈태사가〉 아뢰기를, “건은 임금이요 아비이므로 건이 튼튼하

[역사 기록(사료)으로 보는 고려 거란 전쟁 12] 강동 6주를 둘러싼 공방전 : 거란의 보주 점령 [내부링크]

강동 6주를 둘러싸고 거란은 화전양면전략(和戰兩面戰略)을 구사했다. 사신을 보내 강동 6주 반환을 요구하는 한편 군대를 동원해 강동 6주 점령을 시도했다. 1013년 : 거란의 압록강 도하 시도 1013년 3월 드디어 거란 성종은 사신을 보내 강동 6주 반환을 요구했다. <고려사>에는 야율행평(耶律行平)으로 기록된 야율자충(耶律資忠)이 사신으로 왔다. 야율자충(야율행평)은 이송무(李松茂)와 함께 번갈아 고려에 와 강동 6주를 요구했다. 1013년 3월 17일(음) 무인일에 거란(契丹)에서 사신 좌감문위 대장군(左監門衛 大將軍) 야율행평(耶律行平 - 야율자충)이 와서 흥화(興化) 등 6개 성을 빼앗은 것을 질책하였다. 戊申 契丹使左監門衛大將軍耶律行平來, 責取興化等六城. <고려사> 권4, 현종 4년 3월 무인 고려 반응은 기록되지 않았지만 당연히 거부였다. 이에 거란은 여진과 압록강을 건너 교두보를 설치하고자 군사 행동을 시도했다. 고려군은 거란의 도하를 저지하는데 성공했다. 1013년

[역사 기록(사료)으로 보는 고려 거란 전쟁 13] 강동 6주에 대한 거란의 파상 공세(제3차 전쟁의 전초전) [내부링크]

보주성 점령에 성공한 거란은 보주성을 거점으로 강동 6주에 대한 파상 공세를 시작했다. 한편으로는 공세 중간중간에 사신을 파견하여 강동 6주 반환을 요구했다. 1014년 10월 통주 전투 : 장군 정신용(鄭神勇)의 활약 거란군은 1014년 10월 통주를 공격했다. 아마도 거란군은 흥화진을 무시하고 바로 통주를 포위 공격한 것으로 보인다. 장군 정신용과 별장 주연은 흥화진 주둔 고려군을 이끌고 출격하여 통주성을 포위한 거란군 후방을 공격하여 격파했다. 1014년 10월 6일(음) 겨울 10월 기미일에 거란(契丹)이 국구(國舅)인 상은(詳穩) 소적렬(蕭敵烈)을 보내 통주(通州)를 침략하였다. 흥화진(興化鎭) 장군 정신용(鄭神勇)과 별장(別將) 주연(周演)이 공격하여 패퇴시켰는데, 7백 여 급의 목을 베었고 강에 빠져 죽은 자도 매우 많았다. 冬十月 己未 契丹遣國舅詳穩蕭敵烈來侵通州. 興化鎭將軍鄭神勇, 別將周演擊敗之, 斬七百餘級, 溺江死者甚衆. <고려사> 권4, 현종 5년 10월 기미 이

[역사 기록(사료)으로 보는 고려 거란 전쟁 14] 무신정변의 선구, 김훈과 최질의 난 [내부링크]

강동 6주를 둘러싸고 거란과 일진일퇴 공방전을 벌이는 동안 고려 내부에서는 무신정변(1170)의 선구격인 김훈과 최질의 난이 일어났다. 1014년 11월 1일(음) 11월 계미일에 초하루 상장군(上將軍) 김훈(金訓)과 최질(崔質) 등이 여러 위군(衛軍)을 거느리고 난을 일으켜 중추원사(中樞院使) 장연우(張延祐)와 일직(日直) 황보유의(皇甫兪義)를 유배보냈다. 十一月 癸未朔 上將軍金訓·崔質等率諸衛軍作亂, 流中樞院使張延祐, 日直皇甫兪義. <고려사> 권4, 현종 5년 11월 계미 정변을 주도한 김훈과 최질은 제2차 고려 거란 전쟁에서 공을 세운 사람들이었다. 장군(정4품)이었던 김훈은 통주 삼수채에서 승리한 거란군의 추격을 완항령(緩項嶺)에서 저지했고 중랑장(정5품)이었던 최질은 통주 방어에 공을 세웠다. 이 공로로 김훈과 최질은 각각 무반의 최고직인 상장군(정3품)으로 승진했다. 상장군은 2군 6위 사령관이었기 때문에 아마도 김훈과 최질은 6위 중 각각 한 위를 지휘하고 있었을 것이다.

[프랑스 파리 여행 12] 보주 광장(Place des Vosges), 빅토로 위고 저택(Maison de Victor Hugo), 쉴리 저택(Hôtel de Sully) [내부링크]

보주 광장(Place des Vosges) 보주 광장은 마레 지구(Quartier du Malais)에 있는 고풍스러운 저택으로 둘러싸인 광장이다. 행정 구역 상으로는 파리 3구와 4구 경계에 위치하고 있다. 보주 광장은 근대 초기에 파리에 왕의 동상을 세울 수 있게 조성된 5개 왕의 광장(Place Royale) 중의 하나이다. 보주 광장은 루이 13세(Louis XIII), 도핀 광장(Place Daupine)은 앙리 4세 동상, 빅토와 광장(Place des Victoires)에는 루이 15세 동상이 있다. 방돔 광장(Place Vendôme)에는 루이 14세(Louis XIV) 동상이, 콩코드 광장(Place de la Concorde)에는 루이 15세(Louis XV) 동상이 있었으나 지금은 없어졌다. 보주 광장은 앙리 4세(Henri IV)에 의해 1605년에 건설이 시작되었으나, 앙리 4세가 암살당하고 2년 후인 루이 13세 시절인 1612년에 완공되었다. 그때는 광장은

[역사 기록(사료)으로 보는 고려 거란 전쟁 9] <고려사(高麗史)>와 <고려도경(高麗圖經)>에 나오는 고려의 군사력(병력 규모) [내부링크]

들어가며 고려는 한반도의 전근대 국가 규모에 비춰 경이로운 군대 동원력을 보여주었다. 태조 왕건이 일리천(一利川) 전투에서 동원한 병력은 선봉과 본대를 합쳐서 97,500명이었다. 제2차 고려 거란 전쟁에서는 30만명, 제3차 고려 거란 전쟁에서는 20만명, 여진 정벌은 17만명, 공민왕 때 홍건적과의 전쟁에서도 20만명을 동원했다. 고려 인구 추정과 당시의 생산력으로 비춰볼 때 위에 언급된 병력은 과장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적어도 고려인 스스로와 송나라 사람이 남긴 기록으로는 위의 병력 동원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 대표적으로 육군사관학교 정경현 교수는 '태조 태조의 일리천 전역' <한국사연구> 68(1990.3)에서 태조의 중앙군을 최대 2만명으로 보고 있다. 고려 군대와 관련된 대표 기록은 <고려사> 병지(兵志)이다. 중앙군인 2군 6위, 북계(北界)와 동계(東界)의 주진군(州鎭軍), 경기(京畿)와 5개도의 주현군(州縣軍) 병력과 부대 편성이 나열되어 있다. 자료

[역사 기록(사료)으로 보는 고려 거란 전쟁 10] 고려 광군(光軍) [내부링크]

광군의 창설 목적과 기원 2군 6위, 주진군, 별무반(別武班) 등 고려 군사 조직 중에서 광군은 가장 자료가 부족하고 이 때문에 가장 알기 힘든 조직이다. 잘 알다시피 광군은 거란의 침공에 대비하기 위해 고려 3대 국왕 정종(定宗)이 만들었다. 정종(定宗) 2년(947)에 거란(契丹)이 장차 침입하려고 하므로 군사 300,000을 선발하여 광군(光軍)이라 부르고 광군사(光軍司)를 설치하였다. 定宗二年 以契丹將侵, 選軍三十萬, 號光軍, 置光軍司. <고려사> 권81, 병1(兵一) <고려사> "최언위(崔彦撝)" 열전에는 보다 자세한 정황이 전한다. 최언위의 아들인 최광윤이 후진으로 유학을 갔다가 거란에 사로잡혀 관직 생활을 하다가 거란의 고려 침공 의도를 알고 이를 고려 정부에 알렸다. 이 정보를 들은 고려 정부가 대응 방안으로 광군 30만명을 조직했다. 최광윤(崔光胤)은 일찍이 빈공진사(賓貢進士)의 자격으로 진(晉 - 5대 10국의 후진)에 가서 유학하였다. 거란에게 사로잡혔는데, 재주

[프랑스 파리 여행 10] 루이비통 재단(Fondation Louis Vuitton) [내부링크]

간략한 소개 루이비통 재단은 세계적인 명품 그룹 LVMH에서 예술과 문화를 후원하기 위해 설립한 재단이고, 현재 불로뉴 숲에 있는 재단 건물은 2014년 10월 20일에 개관했다. 이때 개관식에는 당시 프랑스 대통령인 프랑수아 올랑드(François Hollande)도 참석했다고 한다. 루이비통재단 전경 1 루이비통재단 전경 2 2001년에 LVMH 대표였던 베르나르 아르노(Bernard Arnault)가 캐나다 출신 미국 건축가인 프랭크 게리(Frank Gehry)에게 건축을 의뢰하여 시작되었다. 비용은 1억 유로였고 당초 계획으로는 2010년 초에 개관이 목표였다. 숲 보존과 공공 통행권 등의 문제로 야기된 소송으로 시간이 걸려서 2014년에 개관을 했다. 비용도 1.4억 유로가 들었다고 한다. 건축 양식은 1980년에 등장한 포스트 모던 건축 양식인 해체주의(Deconstructivism)에 기반하고 있다고 한다. 파리 시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건물 모양과는 매우 이질적이지만

[감상평] 점점 실망스러워지는 KBS 드라마 <고려 거란 전쟁>(feat. 강감찬의 원맨쇼) [내부링크]

KBS가 야심 차게 방영을 하고 있는 드라마 <고려 거란 전쟁> 이 반환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꽤 오랜만에 만들어지는 정통 사극이고 배경 또한 그동안 관심을 받지 못했던 시대라 많은 관심과 기대를 받았다. 하지만 점점 드라마가 진행될수록, 개인적인 관점에서 볼 때 실망과 우려가 커지고 있다. 고증 부족이나 전쟁 장면 묘사가 아쉽지는 않다. 270억원이라는 제작비를 고려할 때 고증이나 전쟁 장면을 수준 높게 구현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이 점을 문제 삼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예산을 고려할 때 후한 평가를 내리고 싶다. 문제는 등장 인물의 캐릭터가 무너지고 스토리 전개가 이상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역사 드라마라면 다양한 인물들을 등장시키고, 캐릭터를 잘 표현해야 된다. 또한 이들의 행적이 때로는 독자적으로 때로는 중첩되면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야 한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이 점에서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실망감을 주고 있다. 1. 지나친 강감찬의 원맨쇼 제작진은 고려 거란 전쟁을 만들

[역사 기록(사료)으로 보는 고려 거란 전쟁 7] 현종의 개경 환도와 김은부 딸과의 결혼(원성왕후) [내부링크]

현종의 개경 환도 경로 거란군이 압록강 너머로 철군한 사실이 알려지자 현종은 1011년 2월 3일(음) 나주를 떠나 개경으로 향했다. 1011년 2월 3일(음) 2월 정미 〈왕이〉 전주(全州)를 출발하여 여양현(礪陽縣 - 충청남도 홍성)에 묵었다. 二月 丁未 發全州, 次礪陽縣. <고려사> 권4, 현종 2년 2월 정미 다음 날인 2월 4일에는 자신을 환대했던 김은부가 있는 공주로 향했다. 여기서 김은부의 큰 딸을 원성왕후(?~1028)로 맞아들였다. 원성왕후는 2명의 아들을 낳았고, 각각 제9대 덕종, 제10대 정종이 되었다. 정확한 시기는 모르지만 현종은 원성왕후의 두 동생도 왕후로 맞아들였다. 각각 원혜왕후(?~1022)와 원평왕후(?~1028)였고, 원혜왕후는 고려의 전성기를 이끈 제12대 국왕 문종을 낳았다. 공주절도사 김은부(왼쪽)와 원성왕후(오른쪽) 1011년 2월 4일(음) 무신일에 〈왕이〉 공주(公州)에 도착하여 6일 동안 머물면서 김은부(金殷傅)의 큰 딸을 왕비로 맞이

[프랑스 파리 여행 11] 라데팡스(La Défense), 파리의 마천루 [내부링크]

간략한 소개 라데팡스(La Défense)는 파리 외곽 센(Seine) 강변에 조성된 비즈니스 구역이다. 행정 구역 상으로는 파리에 속하지 않고, 오드 센(Hauts-de-Seine) 데파르트망(département)에 속한다. 정부 기관이 입주해 있는 신 개선문(Grande Arche de la Défense)을 포함해 여러 세계적 기업들 본사가 자리 잡고 있다. 보험사인 악사(AXA), 금융 그룹인 소시에테 제네날(Société Générale), 에너지 기업인 토탈(TOTAL), 원자력 기업인 아레바(AREVA)가 대표적이다. 라데팡스 전경 이로 인해 몽파르나스 타워를 제외하면 19세기 풍의 낮은 건물들이 가득 찬 파리 시내와는 달리 라데팡스에서는 높은 빌딩이 하늘로 솟아오르고 있다. 라데팡스 위치 La Défense에서 La는 정관사이고 Défense는 방어, 국방을 의미한다. 1870~1871년 보불전쟁 때 파리를 방어한 병사들의 영광을 기리는 '파리 방어(La Défens

[역사 기록(사료)으로 보는 고려 거란 전쟁 8] 제2차 전쟁의 전후 처리 : 포상과 처벌 [내부링크]

현종은 개경 환도 이후 전후 처리에 나섰다. 양규와 김숙흥 등 전쟁 영웅에 대한 포상을 하는 한 편, 강조 일당을 축출하여 권력 기반을 다지는데 주력했다. 양규와 김숙흥에 대한 포상 : 삼한후벽상공신(三韓後壁上功臣) 제2차 고려 거란 전쟁에서 가장 수훈자는 양규와 김숙흥이었다. 양규와 김숙흥은 강조의 주력군이 붕괴된 이후 남아 있는 얼마 안 되는 군사로 거란군에 대대적인 반격을 주도했다. 양규는 1,700명의 군사로 6.000군이 거란군이 지키는 곽주성을 탈환하여 거란군을 고립시켰다. 이후에 양규는 김숙흥과 더불어 청천강 이북을 휩쓸고 다니며 거란군을 7차례나 격파하여 16,000명을 죽이고 3만명의 고려 포로를 구출했다. 삼한후벽상공신 : 양규(왼쪽)과 김숙흥(오른쪽) 현종은 이 공적을 기려 공부낭중(정5품)인 양규를 공부상서(정3품)로, 별장(정7품)인 김숙흥을 장군(정4품)으로 사후에 직급을 올려주었다. 전공으로 〈양규에게〉 공부상서(工部尙書)를 추증하였고, 양규(楊規)의 처

[역사 기록(사료)으로 보는 고려 거란 전쟁 5] 고난스러운 현종의 몽진과 강화 협상(feat. 지채문과 하공진) [내부링크]

1010년 12월 28일(음) 현종은 개경을 떠나 남쪽으로 향했다. 신하들은 뿔뿔히 흩어지고 호위군은 겨우 지채문이 지휘하는 50여 명에 불과했다. 남쪽의 고려 호족과 관리들은 현종을 반기지 않았고 오히려 위협을 하기도 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현종을 끝까지 지킨 것은 지채문이였고 거란의 추격을 저지한 사람은 유배에서 풀려난 하공진이었다. 하공진의 활약이 없었다면 현종은 거란 선봉대에게 사로잡히고, 한반도의 역사는 바뀌었을지 모른다. 동북면 중랑장 지채문 현종의 피난길 : 1010년 12월(음) 1010년 12월 28일(음) 개경을 떠난 현종 일행은 12월 29일(음) 경기도 파주에 있는 적성현 단조역에 도착했다. 단조역 사람들은 현종을 환영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공격을 하려고 했고 이를 지채문이 막아 냈다. 1010년 12월 28일(음) 행렬이 적성현(積城縣)의 단조역(丹棗驛)에 이르자 군졸 견영(堅英)이 단조역의 사람들과 함께 활을 겨누며 행궁(行宮)을 범하려 하였다. 지채문이 말

[역사 기록(사료)으로 보는 고려 거란 전쟁 6] 고려군의 대반격, 양규와 김숙흥의 대활약과 장렬한 최후(전사), 거란군의 철수 [내부링크]

경기도 양주(청화현)에서 하공진과 고영기를 만난 거란군 선봉대는 개경으로 철수했다. 강조가 이끄는 고려군을 통주 삼수채에서 격파하고 개경을 점령했지만 요 성종으로서는 더 이상 전쟁 수행이 어려웠다. 청천강 이북을 고려군이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거란군은 본국과 고립된 상황이어서 현종을 추격하기는 불가능했다. 또한 시기상으로도 통상 음력 9월에 출정하고 12월에 철수하는 유목민의 거란군의 전쟁 방식에 비추어 볼 때 이미 전쟁은 다음 해 1월을 넘어가고 있었다. 만일 황제가 직접 정벌에 나서지 않는다면 중신 중에 도통을 임명하여 병력 15만명을 이끌고 삼로로 나누어 진격하여 북경에서 모여 9월에 진격하고 12월에 철수하고, 모든 일을 이런 순서로 처리한다. 若帝不親征, 重臣統兵不下十五萬眾, 三路往還, 北京會兵, 進以九月, 退以十二月, 行事次第皆如之. <요사> 권34, 병위지(兵衞志) 상(上) 결국 1011년 1월 11일(음) 요 성종은 철군을 결정한다. 하지만 거란군은 철수하는 과정에서

[감상평] 리들리 스콧(Ridley Scott)의 <나폴레옹(Napoleon)> (2023) [내부링크]

<킹덤 오브 헤븐(Kingdom of Heaven)>(2005)의 감동이 재현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리들리 스콧 감독의 신작 <나폴레옹>을 봤다. 2시간 40분이 지난 후, 기대했던 감동은 전혀 없고 실망감이 몰려왔다. 주제 의식을 찾아볼 수 없고 의미 없는 장면만 나열한 영화 1. 영화 주제는 무엇인가? 나폴레옹은 임종 전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고 알려지고 있고, 리들리 스콧도 이를 약간 변형해서 <나폴레옹> 마지막 장면에 보여주고 있다. 프랑스, 군대, 군대의 수장, 조제핀 La France, l’armée, tête d’armée, Joséphine 리들리 스콧은 나폴레옹이 남긴 네 단어 중 아마도 마지막인 조제핀에 초점을 두고 영화를 풀어가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나폴레옹 인생 전체를 2시간 40분의 영화에 담기 어렵기에 조제핀의 관계에만 중점을 두는 것은 나쁘지 않은 선택일 수 있다. 사실 나폴레옹과 조제핀의 관계는 미스터리한 면이 있고 평범한 사람들로서는 납득이 가

[프랑스 파리 여행 8] 생마르탱 운하 산책(파리 산책길 추천 2탄) [내부링크]

지난번 글에서는 쿨레 베르트(Coulée verte) 산책로를 소개했다. 이번에는 두 번째 파리 산책길을 추천하고자 한다. 쿨레 베르트에서 멀지 않은 생마르탱 운하가 그 주인공이다. https://blog.naver.com/french_75mm/223275256956 [프랑스 파리 여행 7] 쿨레 베르트 산책로(파리 산책길 추천 1탄) 파리에 좀 오래 머물게 되면 파리 곳곳을 산책하는 것은 큰 즐거움이다. 아마도 파리 산책하면 가장 먼저 ... blog.naver.com 생마르탱 운하(Canal Saint-Martin) 소개 생마르탱 운하는 바스티유 광장(Place de la Bastille)에서 센 강을 향해 펼쳐진 길이 4.6km의 운하이다. 운하가 시작하는 곳에 1호선 지하철역인 바스티유가 있다. 생마르탱 운하 위치 1호선 바스티유 역 바스티유 광장(왼쪽)과 광장에서 운하로 내려가는 길(오른쪽) 생마르탱 운하는 나폴레옹 집권기인 1802년에 공사가 시작되었다. 당시 파리 시장인

[역사 기록(사료)으로 보는 고려 거란 전쟁 2] 통주 전투(대회전)(feat. 강조) [내부링크]

이전 글 [역사 기록(사료)으로 보는 고란 거란 전쟁 1] 전쟁 준비와 흥화진 전투 https://blog.naver.com/french_75mm/223275446563 흥화진 공략에 실패한 요 성종은 강조가 주둔하는 통주로 향했다. 제2차 고려 거란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통주 전투가 그 막을 연 것이다. 통주 전투는 제2차 고려 거란 전쟁의 향배를 결정지었을 뿐만 아니라 후일의 고려 정치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통주 전투에서 강조가 승리했다면 고려-거란 전쟁은 여기서 종결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강조는 권력을 계속 유지하고 현종은 명목상의 왕으로 남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통주 전역(Campaign)은 ① 귀주 북쪽 전투 ② 통주성 앞 삼수채 전투 ③ 완항령 전투와 통주성 방어전으로 세분할 수 있다. 통주성 위치 : 평안북도 동림군 고군영리(출처 : 동북아역사재단) 참고로 <요사>는 귀주 전투와 삼수채 전투가 각각 11월 10일과 11일에 벌어진 것으로 나와 고려의 날짜와 차이가 있다

[프랑스 파리 여행 9] 불로뉴 숲 산책(파리 산책길 추천 3탄) [내부링크]

볼로뉴 숲 소개(Bois de Boulogne) 불로뉴 숲은 동쪽의 방센느 숲(Bois de Vincennes)과 더불어 파리의 '허파' 역할을 하는 곳이다. 면적은 불로뉴 숲이 8.45, 방센느 숲이 9.95이다. 불로뉴 숲과 방센느 숲 위치 불로뉴 숲은 프랑스 왕실의 사냥터로 사용되던 숲이었고, 그 안에는 성도 있어 지체 높은 사람들이 사용을 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나폴레옹 1세의 패배 후 영국군과 러시아군 4만 명이 불로뉴 숲에 주둔을 한 이후로 숲은 황폐화되었다. 4만 명의 군인들의 숙소와 땔감 공급을 위해 수천 그루의 나무가 잘려나간 것이었다. 그 이후에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가 나폴레옹 3세 시절에 공공 정원으로 복원되었다. 나폴레옹 3세는 런던 하이드 파크(Hyde Park)에 깊은 인상을 받고 파리 서쪽과 동쪽에 공공 정원을 건설하기로 결정했다. 정원 설계 책임자로 임명된 사람이 장-피에르 바리예-데샹(Jean-Pierre Barillet-Deschamps, 1824~1

[2023 마이 블로그 리포트] 데이터로 알아보는 블로그 속 숨은 직업 찾기! [내부링크]

제 블로그를 방문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프랑스 전문 여행 블로그로 발전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때때로 책과 영화 등 감상평도 올리겠습니다. 2023 마이 블로그 리포트 올해 블로거들의 직업을 공개합니다! 내 직업 확인하고, 2024년 행운도 뽑아보세요! https://mkt.naver.com/p1/2023myblogreport

[역사 기록(사료)으로 보는 고려 거란 전쟁 3] 서경 전투(feat. 지채문, 탁사정, 대도수, 강민첨, 조원) [내부링크]

1010년 11월 25일(음력) 통주 전투에서 거란군은 대승을 거뒀다. 하지만 통주성을 함락시키지 못하고 완항령에서도 저지를 당해 청천강 이북에서 거점 확보에 실패했다. 12월 들어 상황은 반전되었다. 흥화진과 통주성을 남겨두고 남진을 시작한 거란군은 곽주를 함락시켜 드디어 거점을 마련했다. 이어 안북도호부, 숙주를 잇따라 점령하고 서경을 향해 거침없이 진격했다. 서경을 지키는 고려 지휘부는 거란군의 기세에 놀라 항복을 결정했다. 하지만 동북면의 고려군이 서경에 도착하면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고, 지채문, 강민첨, 조원의 활약으로 고려군은 제2의 도시 서경을 지켜냈다. 곽주 전투 고려 기록에서 곽주 전투는 중요하게 다뤄지나 거란 기록에서는 전투 없이 곽주 스스로 항복한 것으로 나온다. 거란 기록 (고려의) 동주(銅州-통주)·곽주(霍州)·귀주(貴州)·영주(寧州-안북도호부)가 모두 항복하였다. 銅·霍·貴·寧等州皆降 <요사> 권15 성종 통화 28년 11월 무자 고려 기록 곽주 방어 책임

[역사 기록(사료)으로 보는 고려 거란 전쟁 4] 양규의 곽주 탈환, 현종의 몽진 결정과 개경 함락 [내부링크]

거란군은 1010년 12월 13일에서 17일(음력)까지 5일 동안 서경을 공격했으나 함락시키지 못했다. 서경을 포위하는 도중에 청천강 이북에서 극적인 사건이 벌어진다. 흥화진을 지키던 양규가 결사대 700명을 이끌고 빠져나와 통주에서 1,000명의 병력을 보강한 다음에 곽주를 수복한 것이었다. 거란으로서는 청천강 이북의 거점이 사라지고 서경도 함락시키지 못해 고립된 상황에 처했다. 요 성종은 개경으로 진격한다는 대담한 결정을 내렸다. 개경을 지킬 고려군은 없었고 결국 현종은 강감찬의 건의에 따라 전라남도 나주로 몽진을 하게 되었다. 곽주 수복 양규의 곽주 수복은 제2차 고려 거란 전쟁에서 가장 극적인 전투이다. 고려 장군들과 정예 군사의 실력이 동아시아에서 최강임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많은 기록이 없고 단편적인 사실만 기술된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거란 기록 거란 기록에서는 양규의 이름은 거론되지 않는다. 1011년 1월 거란군이 후퇴할 때 항복했던 성들

프랑스 파리 여행 1 : 오랑주리 미술관(Musée de l'Orangerie)과 모네의 수련 [내부링크]

오전에 지베르니의 모네의 집과 정원을 보고 나서 그 기세를 이어 오랑주리 미술관(Musée de l'Orangerie)으로 향했다. 오랑주리 미술관은 2010년과 2011년에 파리에 갔을 때 방문을 하려고 했으나 그때마다 사정이 생겨서 가보지 못한 곳이었다. 오랑주리 미술관 오랑주리 미술관 역사 원래 오랑주리 미술관은 나폴레옹 3세(Napoléon III)에 의해 튈르리 궁전 정원(jardin du palais des Tuileries)에 있는 오렌지 나무를 겨울에 보관하기 위한 일종의 온실로 만들어졌다. 오랑주리(orangerie) 단어 자체가 '오렌지 나무 온실'이라는 뜻이다. 온실로 지어졌기 때문에 햇빛이 잘 들어오도록 남쪽인 센 강을 향한 벽에는 창이 설치되어 있고 북쪽은 북풍을 막기 위한 벽으로만 되어 있었다고 한다. 오랑주리 미술관 남쪽 벽 보불 전쟁으로 나폴레옹 3세가 실각하면서 오랑주리 미술관은 정부 소유가 되었고, 오렌지 나무가 튀를리 정원에 있는 동안에는 원예, 음

프랑스 파리 여행 2-1 : 퐁텐블로 성(궁전)의 역사, 가는 법, 내부 관람 [내부링크]

퐁텐블로 성(Château de Fontainebleau) 역사 퐁텐블로 궁전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퐁텐블로 성은 파리 남동쪽으로 55 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프랑스 왕실 소유의 성이었다. 성이 처음으로 지어진 시기는 중세 시대였고, 이때는 프랑스 왕들의 사냥 숙소로 사용되었다. 르네상스 시기인 16세기에 프랑스와 1세(François I)가 중세 양식으로 된 부분을 개축하고 르네상스 형식의 건물을 지어 확장함으로써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그 후대 왕들도 지속적인 확장 등의 공사를 통해 오늘날 퐁텐블로 성은 중세, 르네상스, 고전기 양식을 한데 갖춘 건물이 되었다. 역대 프랑스 왕들이 자주 이용한 성이지만 그중에서도 앙리 2세(Henri II)와 나폴레옹(Napoléon)이 이 성에 머물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왕들이 많이 이용하다 보니 역사적으로 중요한 일이 많이 일어났다. 루이 13세(Louis XIII)가 퐁텐블로 성에서 태어났다. 1685년 10월 18일 루이

[서평] 윌리엄 케인, <거장처럼 써라> (2011) [내부링크]

지은이 : 윌리엄 케인(William Kane) 옮긴이 : 김민수 출판사 : 이론과실천 출간년 : 2011 오노레 드 발자크(Honoré de Balzac), 표도르 도스토옙스키(Fyodor Dostoevsky)부터 필립 K. 딕(Philip K. Dick), 스티븐 킹(Stephen King)에 이르는 18인의 작가들이 가지고 있는 작법 특징을 잘 소개하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을 통해. 캐릭터 잡는 법, 갈등 구조를 만드는 법, 묘사와 문장 구성 등등 개별 작가들이 가지고 이는 고유의 특성을 빠른 시간에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개별 작가들의 고유한 작법 보다는 지은이가 이 책에서 강조하고 있는 주제는 두 가지다. 첫째는 모방이다. 지은이는 현대에 들어 너무 창의성과 고유성을 강조한 나머지 작법 교육에서 모방이 사라진 것을 안타까워 하고 있다. 그러면서 작가로서의 시작은 모방이며, 모방은 자신에게 없다고 생각했던 새로운 글쓰기 근육을 발견하는 것이라고 힘주어 강조하고 있다.

프랑스 파리 여행 2-2 : 퐁텐블로 성(궁전) 외부와 시내 구경 [내부링크]

퐁텐블로 성(Château de Fontainebleau)은 내부도 좋았지만 그 주변의 정원과 연못이 더 아름다웠다. 130헥타르에 달하는 정원과 연못은 닫혀 있는 마음을 열게 만들고 정화시켜 준다. 퐁텐블로 성 정원 지도 명예 광장(Cour d'Honneur) 궁전 밖으로 나오니 처음에 들어왔던 '명예 광장'이 다시 보였다. 광장 정면의 건물로 올라가는 계단을 유려한 곡선으로 잘 만들었다. 하지만 그 이름을 보고는 약간 당황스러웠다. 이름을 너무 막 지었기 때문이다. '말발굽 계단(Escalier en Fer à cheval)'이 그 이름이었다. 명예 광장 말발굽 계단 한국 사람들이 보기엔 프랑스뿐만 아니라 유럽이 약간 건물 이름을 그냥 대충 지는 것 같기는 하다. 궁전은 사라지고 정원만 남은 튈르리 정원(Jardin des Tuileries)의 튈르리(tuilerires)의 뜻은 기와 제작소 또는 기와 굽는 장소를 의미한다. 왕궁 이름을 이렇게 짓는 것이 조금은 놀랍다. 자동차

나치에 저항했던 어느 독일 장군의 장교 분류법 [내부링크]

흔히 바이마르 공화국 기간 중 독일의 재군비를 준비했던 한스 폰 젝트(Hans von Seeckt, 1866~1936) 장군의 명언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쿠르트 폰 함머슈타인-에쿠오르트(Kurt von Hammerstein-Equord, 1878~1943) 장군의 말이다. 함머슈타인-에쿠오르트 장군은 귀족 출신이기는 하지만 바이마르 공화국에 충섬심을 가지고 있었고, 히틀러 체제에 반대를 했던 인물이었다. 히틀러 체제를 타도하기 위한 노력을 했지만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1943년에 암으로 사망했다. 나는 휘하의 장교들을 네 분류로 나눈다. 똑똑하고, 부지런하고, 멍청하고, 게으른 장교들이다. 통상 두 가지의 특성이 결합된다. 똑똑하고 부지런한 장교들은 참모 역할에 적합하다. 멍청하고 게으른 장교들은 군대의 90%를 차지하고 있으며, 일상적인 업무에 적합하다. 똑똑하고 게으른 장교는 지휘관의 역할에 적합하다. 왜냐하면 이들은 어려운 결정을 하는 데 필요한 지적인 명료함과 평정심을

[파리(Paris) 호텔 리뷰 1] 호텔 레지던스 앙리 4세(Hôtel Résidence Henri IV) 후기(5구) [내부링크]

파리에서 2주간 체류하면서 2개의 호텔에 머물렀다. 그중에서도 가장 오랜 기간을 '호텔 레지던스 앙리 4세(Hôtel Résidence Henri IV)'에서 머물렀다. ※ 호텔 레지던스 앙리 4세 홈페이지 https://www.residencehenri4.com/ 원래는 파리 몽파르나스 역(Gare de Paris-Montparnasse) 부근에 숙박 플랫폼 업체를 통해 호텔을 예약했으나 취소 당하고 부랴부랴 잡은 곳이 호텔 레지던스 앙리 4세였다. 하지만 위치뿐만 아니라 서비스 측면에서 너무나 만족스러운 호텔이었다. 호텔 레지던스 앙리 4세 위치 호텔 레지던스 앙리 4세 위치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다. 센(Seine) 강 남쪽, 좌안(Rive gauche)의 라탕 지구(quartier Latin)에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이다. 호텔 레지던스 앙리 4세 위치 서쪽으로 걸어서 7분 떨어진 곳에 프랑스를 대표하는 고등 연구기관인 콜레주 드 프랑스(Collège de France)가

[파리(Paris) 호텔 리뷰 2] 하얏트 리젠시 파리 에투알(Hyatt Regency Paris Étoile) 후기(17구) [내부링크]

한 달여의 프랑스 여행의 마지막 2박 3일은 하얏트 리젠시 파리 에투알(Hyatt Regency Paris Étoile)에서 머물렀다. 프랑스를 떠나기 전 34일간의 여행의 피로를 풀고, 파리 전체를 볼 수 있는 곳에 머무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위치 하얏트 리젠시 파리 에투알은 개선문에서 서북쪽의 파리 시내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행정 구역 상으로는 17구(17e arrondissement)에 있다. 호텔에서 조금만 외곽으로 나가면 파리 외곽 순환도로가 보인다. 호텔에서 더 서북쪽으로 올라가면 라데팡스(La Défense)가 나온다. 파리 외곽 순환도로 지하철 1호선과 RER C선을 탈 수 있는 뇌이-포트 마요(Neuilly-Porte Maillot) 역이 걸어서 5분 정도 떨어져 있다. 북쪽으로 도보 12분 정도 떨어진 포트 샹페르(Porte de Champerret) 역에서는 3호선을 이용할 수 있다. 1호선과 RER C선 뇌이-포트 마요 역 3호선 포트 샹페르 역 외부와 로

[서평] 강명관, <조선 시대의 책과 문화>와 <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 [내부링크]

<조선 시대의 책과 문화> (서울 : 천년의 상상, 2014) <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 (서울 : 푸른역사, 2015) 강명관 교수의 <조선 시대의 책과 문화>와 <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는 쌍을 이루는 책이다. 전자가 책의 생산과 유통 등 제도적인 면에 초점을 두었다면, 후자는 정도전부터 단재 신채호까지 책을 광적으로 좋아한 지식인들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간 책이다. 강명관 교수는 조선이라는 국가와 주요 지식인들이 보여준 책에 대한 관심에 대해서는 찬사를 보낸다. 하지만 분명한 한계점도 명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최초의 금속활자를 자랑스워 하지만 구덴베르크의 인쇄술이 유럽을 변혁한 계기를 만든 반면, 조선의 금속활자는 다품종 소량으로 책을 인쇄한 것 이상의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 발명된 이래의 50년과 태종의 계미자부터 성종의 계축자까지 91년을 비교해보자. 유럽에서는 50년 동안 250개 혹은 1,000개의 인쇄소가 생겨났지만, 조선에서는

프랑스 파리 여행 3 : 라탱 지구(Quartier Latin) [내부링크]

라탱 지구(Quartier Latin)에 대한 소개 라탱 지구는 소르본 대학교(Sorbonne Université)를 중심으로 한 센(Seine) 강 좌안의 파리 5구와 파리 6구 지역을 의미한다. 원어 발음에 가깝게 표시하자면 '꺄흐띠에 라땅'이고, 번역하면 '라틴어를 쓰는 동네'라고 할 수 있다. 중세의 대학 교육은 라틴어로 이뤄졌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 지역은 프랑스 지성의 상징 같은 곳이다. 소르본 대학교를 비롯해 콜레주 드 프랑스(Collège de France), 유명한 그랑제콜(Grandes Écoles)이 자리를 잡고 있다. 콜레주 드 프랑스(Collège de France) 콜레주 드 프랑스는 1530년 프랑수아 1세(François Ier)가 창설한 프랑스 고등교육연구기관이다. 콜레주 드 프랑스 교수 자리는 프랑스 학술계에서 가장 영예로운 자리이다. 앙리 베르그송(Henri Bergson, 1859~1941), 레이몽 아롱(Raymond Aron, 1905~

어느 책의 훈훈한 서문 : 주디스 헤린, <비잔티움> (2007) [내부링크]

[서지 정보] 주디스 헤린(Judiith Herrin), 이순호 옮김, <비잔티움 : 어느 중세 제국의 경이로운 이야기> (파주 : 글항아리, 2007) 책의 서문은 목차와 더불어 지은이의 의도를 잘 나타내는 부분이다. 대학교 때 교수님 한 분은 도서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학생들이 신청한 책의 서문과 목차를 읽으면서 조금이나마 공부를 했다는 말씀을 하시기도 하셨다. 정작 책을 읽고 나면 서문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아래에 소개하는 책의 서문은 너무나 훈훈하여 오래 전에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억이 생생하다. 2002년 어느 날 오후, 건설 인부 두 사람이 킹스 칼리지의 내 연구실 문을 두드렸다. 대학 내 낡은 건물을 보수하면서 내 방 앞을 종종 지나다니다 '비잔티움 역사 교수 연구실'이라는 명패가 문에 달린 것을 보고 궁금증이 일어 들른 것이었다. 두 사람은 내게 '비잔타움 역사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자기들 생각에는 비잔티움이 터키와 어떤 연

프랑스 파리 여행 4 : 팡테옹(Panthéon) [내부링크]

조국이 위대한 사람들에게 사의를 표하며 AUX GRANDS HOMMES LA PATRIE RECONNAISSANTE 팡테옹 정면 팡테옹(Panthéon)의 역사 원래 팡테옹은 루이 15세(Louis XV)가 파리의 수호성인인 성 주느비에브(Sainte Geneviève)에게 봉헌하기 위해서 만든 성당이었다. 공사는 1758년에 시작되었는데 1790년에 완공되었다. 이미 루이 15세는 세상을 뜬 시기였고 프랑스 혁명이 발발한 다음 해였다. 뛰어난 웅변가로 초기 프랑스 혁명을 이끌어간 미라보(Mirabeau, 1794~1791) 백작이 사망하자, 프랑스 제헌의회(Assemblée nationale constituante)는 주느비에브 성당을 팡테옹이란 이름으로 바꾸고 위대한 사람을 안치하기로 결정했다. 그 첫 번째가 미라보 백작이고 다음으로 안치된 사람이 볼테르(Vlotaire, 1694~1778)였다. 하지만 미라보 백작은 사후에 왕실로부터 돈을 받고 왕실과 오스트리아에 결탁한 것이

프랑스 파리 여행 5 : 에펠탑 사진 추천 장소(포토존) [내부링크]

파리의 상징인 에펠탑(Tour Eiffel) 사진을 찍는 가장 유명한 장소는 상드 마르스(Champs de Mars)와 사요 궁전(Palais de Chaillot)이다. 상드 마르스에서 찍은 에펠탑 1 상드 마르스에서 찍은 에펠탑 2 사요 궁전에서 찍은 에펠탑 1 사요 궁전에서 찍은 에펠탑 2 하지만 여기 말고도 에펠탑 사진 찍기가 좋은 장소 7곳을 추천을 하고자 한다. 순서는 콩코드 광장에서 에펠탑으로 내려오는 방향이다. 에펠탑 사진 명소 ① 콩코드 다리(Pont de la Concorde) 부근 콩코드 다리 북쪽에서 에펠탑을 찍으면 파리 다리 중 가장 아름다운 알렉상드르 3세 다리(Pont Alexandre III)와 에펠탑을 한 번에 담을 수 있다. 아래 사진은 낮에 찍다 보니 역광으로 찍을 수밖에 없어 알렉상드르 3세 다리가 잘 안 보였다. 밤에 이곳에서 사진을 찍는다면 아름다운 에펠탑과 알렉상드르 3세 다리 야경을 찍을 수 있다. 콩코드 다리에서 찍은 에펠탑 1 콩코드 다

[프랑스 파리 여행 6] 생에티엔뒤몽 성당과 생제르맹데프레 수도원 [내부링크]

생 에티엔 뒤 몽 성당(Église Saint-Étienne-du-Mont) : 미드나잇 인 파리 생 에티엔 뒤 몽 성당은 파리 5구 팡테옹(Panthéon)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다. 1494년에 건설이 시작되어 1624년에 완공된 유서 깊은 성당이다. 성당 외관 원래는 이 성당은 파리 수호성인인 주느비에브(Geneviève)의 유해가 있는 곳으로 유명했다. 하지만 21세기에 들어서는 우디 앨런(Woody Allen) 감독의 <미드나잇 인 파리(Midnight in Paris)>(2011)의 배경으로 더 유명해진 것 같다. 파리 밤길을 걷다가 잠시 쉬는 주인공을 1920년대의 파리로 연결시켜주는 장소가 바로 생 에티엔 뒤 몽 성당 북쪽 문의 계단과 그 옆의 길이다. 성당 북쪽 문의 계단 미드나잇 인 파리의 주인공이 계단에 앉아 있는 모습 1920년대 문학가를 타운 구형 푸조(Peujeot)가 올라온 길 구형 푸조(Peujeot)가 올라오는 장면 성당 자체만 봐서는 작은 규모는 아니

[프랑스 파리 여행 7] 쿨레 베르트 산책로(파리 산책길 추천 1탄) [내부링크]

파리에 좀 오래 머물게 되면 파리 곳곳을 산책하는 것은 큰 즐거움이다. 아마도 파리 산책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길은 센 강이다. 파리 여행을 와서 센 강을 산책하는 것은 당연히 해야할 일 중의 하나이다. 센 강 산책 1 : 공사 중인 노트르담 대성당의 모습이 보인다. 센 강 산책 2 센 강 산책 3 하지만 센 강 주변으로는 사람이 워낙 많다 보니 산책의 낭만은 사라지고 아래 사진처럼 도떼기시장을 만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에펠탑 주변 센 강에 모인 관광객들 센 강을 고즈넉하게 산책하고 싶으면 시테(Cité) 섬 동쪽 강변으로 가기를 추천한다. 하지만 센 강 이외에도 파리를 산책할 방법은 많다. 그 중에서도 많은 관광객을 만나지 않고 파리 사람이 된 것처럼 산책할 수 있는 길 3군데를 추천하고자 한다. 1탄은 도심 속의 고가 산책길인 바로 쿨레 베르트 산책로이다. 쿨레 베르트 산책로(Coulée verte René-Dumont) 소개 쿨레 베르트 산책로는 사용되지 않았던 철길을 개조

[사료로 보는 고려 거란 전쟁] 전쟁 준비와 흥화진 전투 [내부링크]

고려 거란 전쟁과 관련해서 고려 측 기록으로는 <고려사(高麗史>와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가 있고 거란 기록으로는 <요사(遼史)>가 있다. 모두 실제 역사 기록이기는 하지만 이순신의 <난중일기>와 같은 당대 기록은 아니다. <고려사>와 <고려사절요>는 조선 문종 때 완성되었고, <요사>는 그보다 빠르지만 원나라 때 작성되었다. 후대의 편찬자들이 정리한 기록에 불과하고 또한 대부분의 동양 역사서들이 그렇듯이 전투 관련해서는 세부 묘사가 결여되어 있다. 따라서 큰 사건의 흐름을 제외하고는 세부 전투와 사건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는 알기 어렵다. 지금 방영하고 있는 드라마뿐만 아니라 고려 거란 전쟁을 다룬 대다수의 책들에서 묘사하고 있는 인물 간의 관계나 전투 묘사 등은 좋게 말하면 '합리적 추론'이고 나쁘게 말하면 '상상의 나래'이다. 고려 거란 전쟁 드라마 합리적 추론에 기반한 고려 거란 전쟁 관련 도서 '합리적 추론' 또는 '상상의 나래'가 어떠한 사료적 근거를 가지고 펼쳐졌는지 알기

프랑스 생말로(Saint-Malo) 여행 : 기본 정보 [내부링크]

소개 해적들의 도시로 유명한 생말로는 영불해협에 자리 잡고 있는 항구 도시이다. 생-말로 앞에는 영국령 건지(Guernsey) 섬과 저지(Jersey) 섬이 있다. 이 두 섬에서 빅토르 위고(Victor Hugo)가 망명 생활을 했고 특히 저지 섬에서 그 유명한 <레미제라블(Les Misérables)>을 집필했다. 생말로는 행정 구역 상으로는 프랑스 브르타뉴 레지옹(Région Bretagne), 일-에-빌렌 데파르트망(département d'Ille-et-Vilaine)에 속하고 있다. 파리에서는 서쪽으로 455km 떨어져 있고, 브르타뉴 레지옹의 중심 도시인 렌(Rennes)에서는 75km 떨어져 있다. 인구는 2020년 기준 4.7만 명으로 매우 작은 도시이다. 생말로 전경 생말로라는 이름은 웨일스(Wales) 출신으로 영불해협을 건너 선교 활동을 하고 생-말로 지역의 첫 번째 주교가 된 마클로비우스(Maclovius)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졌다. 생말로 역사 중 흥미로운 에

프랑스 생말로(Saint-Malo) 여행 2 : 성벽, 바닷가, 그랑 베와 프티 베 [내부링크]

역에서 성곽(Intro-muros)으로 가는 길 생말로 역을 나오니 갈매기 두 마리가 우리를 반겨주고 있었다. 릴(Lille)과 아미앵(Amiens)을 갔을 때와는 달리 날씨가 너무 좋았다. 아직 봄의 쌀쌀함이 있었지만 푸른 하늘을 볼 수 있음에 감사했다. 생말로 역은 투명한 유리로 되어 있었고 앞에 넓은 광장이 있어서 사람 가슴을 탁 트이게 만들었다. 생말로 역과 광장 생말로 역에서 성곽(Intro-muros)까지는 버스로 8분 정도 소요되었다. 20세기에 재건된 도시라 파리나 보르도에 비해 건물도 현대적이었고 도로도 넓었다. 항구가 보이기 시작했다. 요트들이 줄지어 정박하고 있는 가운데 범선 한 척이 눈에 들어왔다. 이름은 <왕의 별>이라고 번역할 수 있는 <에투왈 뒤 로이(Étoile du roy)>였다. 에투왈 뒤 로이 1 에투왈 뒤 로이 2 영국 ITV의 역사 드리마 <혼블로워(Honblower)> 시리즈에 쓰기 위해 1996년에 터키 선착장에서 건조한 범선이다. 6등급 프

프랑스 생말로(Saint-Malo) 여행 3 : 맛집과 쇼핑 [내부링크]

라 뒤세스 안느(La Duchesse Anne) 파리에서 일찍 출발하다 보니 아침을 제대로 못 먹었다. 기차 안에서 간식을 먹기는 했지만 아침 식사로는 부족했다. 관광사무소에서 지도를 사고 성안으로 들어오니 여러 갈레트 식당이 우리를 반겨주고 있었다. 3시간 동안 기차를 타고 온 피로도 풀고 에너지를 보충하고자 한 갈레트 식당에 들어갔다. 식당 이름은 '안 여공작'이라고 번역할 수 있는 라 뒤세스 안느(La Duchesse Anne)였다. 아마도 샤를 8세(Charles VIII)와 샤를 8세의 사촌인 루이 12세(Louis XII)와 각각 결혼하여 두 번이나 프랑스 왕비가 되었던 '브르타뉴의 안(Anne de Bretagne, 1477~1514)'의 이름을 딴 것 같았다. 식당 전경(사진을 찍지 못해 구글 지도에서 가져왔다) 갈레트(Galette)와 시드르(Cidre), 프로방스(Provence) 로제 와인을 시켰다. 오전부터 술을 마실 수 있는 것은 여행 때만 가능한 특권인 것

파리 교통권 나비고(Navigo)로 TER/Intercité를 탈 수 있는가? [내부링크]

최근에 블로그로 유입되는 검색어를 봤더니 <나비고이지 TER>, <파리 TER 모빌리스>와 같이 파리 교통권으로 TER를 이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검색어가 종종 보였다. TER 전에 일드 프랑스 교통공사(IDF Mobilités) 홈페이지를 거의 번역하다시피 해서 파리 교통권에 글을 작성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 글에서 기차(Train)를 언급할 때는 주로 트랑질리앙(Trainsilien)을 의미했고 TER 등을 언급한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일드 프랑스 교통공사 홈페이지에서 개별 요금제 메인 항목에서 TER 등을 언급한 경우는 <나비고 죈느 위크엔드(Navigo Jeunes Weekend)> 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https://blog.naver.com/french_75mm/223120245244 파리 교통권(교통카드) 총정리 1부 : 기본 정보(까르네, 나비고 등) 들어가며 프랑스 <일 드 프랑스 교통공사(Île-de-France Mobilités)>의 공식 홈페이지 내용을

프랑스 에트르타(Étretat) 여행 1 : 소개와 가는 방법 [내부링크]

소개 하얀색 백악 절벽으로 유명한 에트르타는 연간 300만 명이 찾는 곳이다. 르아브르(Le Havre)에서 동북쪽으로 32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행정 구역 상으로는 노르망디 레지옹(région Normadie), 센-마리팀 데파르트망(département de la Seine-Maritime)에 속해 있다. 에트르타는 귀스타브 쿠르베(Gustave Courbet)와 클로드 모네(Claude Monet)와 같은 화가들이 즐겨 그렸고, 기 드 모파상(Guy de Maupassant), 귀스타브 플로베르(Gustave Flaubert), 모리스 르블랑(Maurice Leblanc)이 사랑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포르트 다발(Porte d'Aval) 특히 모리스 르블랑은 에트르타의 포르트 다발(Porte d'Aval)에서 영감을 얻어 소설 <기암성(L'Aiguille creuse)>(1909)을 집필했고, 1918년에는 에트르타로 이사하여 1939년까지 살았다. 르블랑이 살았던

프랑스 에트르타(Étretat) 여행 2 : 시내와 바닷가 [내부링크]

에트르타 가는 길 8시 40분 르아브르(Le Havre)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생라자르(Saint-Lazare) 역으로 향했다. 역에 도착하니 한 승객이 멋진 피아노 연주를 들려주고 있었다. 기차는 약 2시간을 달려 브레오테-뵈즈빌(Bréauté-Beuzeville) 역에 도착했다. 꽤 많은 사람들이 내렸고 이들 중 상당수는 우리와 같이 에트르타로 가는 버스를 타는 사람이었다. 영국인 관광객들, 프랑스어를 잘하는 일본인,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우리와 같이 에트르타로 가는 부자(父子) 여행객이 내 시선을 끌었다. 서로 손을 잡고 걸어가는 모습에서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사랑과 믿음이 느껴졌다. 아버지와 아들 브레오테-뵈즈빌 역에서 에트르타로 가는 길은 노르망디(Normandie) 지역의 목가적 정취를 마음껏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평야는 끝없이 펼쳐져 있고 푸른 목초 위에 소들은 풀을 먹고 있었다. 중간중간에는 평화로운 농촌 마을이 보였고, 옛 철도는 학생들의

프랑스 에트르타(Étretat) 여행 3 : 에트르타 정원, 예배당, 롸조 블랑 기념비 [내부링크]

시내와 해변 구경을 마치고서는 일명 아기 코끼리 바위인 팔레즈 다몽(Falaise d'Amont)으로 올라갔다. 해변가에 있는 입구로 들어가서 건물 사이에 있는 계단을 통과하면 약간은 가파른 경사길이 펼쳐진다. 건물 사이에 있는 계단 팔레즈 다몽 가는 길 힘든 길일 수 있지만 하지만 가파른 경사길에서 바라보는 전망이 신체의 고단함을 사라지게 하는 마법을 부린다. 오르막을 걷기 힘든 사람들은 꼬마 기차를 탈 수 있다. 시내에서 팔레즈 다몽에 있는 에트르타 박물관(Musée du patrimoine d'Étretat)까지 운행을 한다. 요금은 8유로이다. 운행 기간은 3월 둘째 주부터 11월까지이다. ※ 꼬마 기차 홈페이지 https://www.le-petit-train-etretat.com/ 꼬마 기차 처음에는 팔레즈 다몽 정상에서 바다와 주변 풍경을 보러 올라갔는데, 다른 볼 것이 많았다. 에트르타 정원, 절벽 위에서 바람에 맞서고 있는 예배당, 그리고 하늘을 찌를 듯한 기념비가 있

프랑스 에트르타(Étretat) 여행 4 : 절벽(코끼리 바위) [내부링크]

에트르타의 상징인 절벽, 일명 코끼리 바위 탐방을 나섰다. 아기 코끼리 바위인 팔레즈 다몽(Falaise d'Amont)과 엄마 코끼리 바위인 팔레즈 다발(Falaise d'Aval)은 해변을 가운데 두고 양옆에 서 있다. 아빠 코끼리 바위인 팔레즈 라 만포르트(Falaise la Manneporte)는 팔레즈 다발로 가야만 볼 수 있다. 아기 코끼리 바위, 팔레즈 다몽(Falaise d'Amont) 팔레즈 다몽 정상은 녹색의 넓은 평지가 펼쳐져 있어 밑에서 예상했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가까이서 본 팔레즈 다몽 팔레즈 다몽에서 바라본 영불 해협 전망대 바다를 바라보고 어느 노부부가 나란히 앉아서 망중한을 즐기고 있었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는 내 마음도 평안해졌다. 팔레즈 다몽 정상에는 바다를 따라 길이 펼쳐져 있었다. 어디까지 이어지는 길인지 궁금해졌다. 페캉(Fécamp) 방향이지만 걸어서 갈 수 있을까? 에트르타에 3일을 묵을 수 있다면 하루는 팔레즈 다몽에서 페캉으로, 다

프랑스 에트르타(Étretat) 여행 5 : 식당, 카페, 초콜릿 가게, 뤼팽 박물관 [내부링크]

라 플로티으(La Flottille) 생말로(Saint-Malo)와 마찬가지로 호텔을 일찍 나서는 바람에 아침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래서 에트르타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주린 배를 채웠다. 비수기라 그런지 식당들 중에는 공사를 하고 있는 곳도 꽤 있었다. 우리가 고른 식당은 <라 플로티으(La Flottille)>였다. 한국어로는 작은 선단 또는 함대로 옮길 수 있다. 라 플로티으 식당 내부는 들보가 보이는 인테리어로 장식되어 있었다. 예전 에트르타 전통 건축 형태를 유지하면서도 튼튼하게 개조한 모습이었다. 우리가 들어왔을 때 빈자리는 두 개밖에 없었다. 곧 식당은 손님으로 가득 찼고 그 이후에 온 손님들은 야외 자리를 이용하거나 기다려야만 했다. 우리를 담당한 직원은 유쾌하고 열정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이 직원 덕분에 식사를 하기 전에 기분이 유쾌해졌다. 식사 메뉴(왼쪽), 레드 와인 메뉴(가운데), 화이트 와인 메뉴(오른쪽) '오늘의 생선 요리(Poisson du jour

오베르 쉬르 우아즈(Auvers-sur-Oise) 가는 법 [내부링크]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가 생의 마지막을 보낸 오베르 쉬르 우아즈는 대중교통으로 가기 약간 까다롭다. 기차역이 있기는 하지만 파리에서 대중교통으로 오베르 쉬르 우아즈까지는 한 번에 가는 방법은 없다. 트랑질리언(Transilien), RER, 버스 등을 조합해서 가야만 한다. 이 글에서는 버스는 제외하고, 트랑질리언, RER, TER를 조합해서 가는 방법을 설명하고자 한다. 오베르 쉬르 우아즈 역 트랑질리언(Transilien) H선 파리 북역(Gare du Nord)에서 트랑질리언 H선을 타는 방법이다. 파리 북역에서 출발하는 트랑질리언 H선은 4가지의 지선으로 나누어진다. 1. 퐁투와즈(Pontoise) 행 2-1. 발몽두와(Valmodois) 경유 페르상 보몽(Persan-Baeumont) 행 : POVA로 표시됨 2-2. 몽술트 마플리에(Montsoult Maffliers) 경유 페르상 보몽(Persan-Baeumont) 행 : POMA로 표시됨 3.

오베르 쉬르 우아즈(Auvers-sur-Oise) 여행 1 : 라부 여인숙, 성당, 빈센트 반 고흐 묘 [내부링크]

오베르 쉬르 우아즈(Auvers-sur-Ose) 가는 길 파리 북역(Gare du Nord)에서 트랑질리앙(Transielien) H선을 타고 오베르 쉬르 우아즈로 향했다. 트랑질리앙 기차는 깔끔했다. 통근 시간이 아니라서 그런 지 사람이 많지 않았다. 파리 북역의 트랑질리앙 H선 행선지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기차를 탔는데 중간에 확인해 보니 뤼자르슈(Luzarches)로 가는 기차였다. 몽술트 마플리에(Montsoult-Maffliers)에 내려서 페르상 보몽(Persan Beaumont)까지 간 다음 퐁투와즈(Pontoise) 행을 타고 오베르 쉬르 우아즈(Auvers-sur-Oise)에 12시 30분경에 도착할 수 있었다. 1시간 30분이 걸렸으니 예상보다 20분 정도 더 걸린 셈이다. 아담한 크기의 역이 우리를 맞이해주고 있었다. 역사 안의 벚꽃이 아름답게 피어 있었다. 오베르 쉬르 우아즈 역 오베르 쉬르 우아즈 역 : 반 고흐가 살았던 시기의 역 모습을 담은 사진이 걸려

오베르 쉬르 우아즈(Auvers-sur-Oise) 여행 2 : 압생트 박물관, 오베르 성, 가셰 박사 집, 카페와 빵집 [내부링크]

압생트 박물관(Musée de l'Absinthe) 라부 여인숙을 기점으로 서쪽으로 조금 더 가면 압생트 박물관이 나온다. 압생트는 벨 에포크(Belle époque) 시대에 크게 인기 있던 술이었고, 특히 인상파 화가들이 특히 사랑한 술이었다. 술이 녹색을 띠고 있어 '녹색의 요정(fée verte)'로 불린다. 압생트 박물관 외부 압생트 박물관 안내문 하지만 압생트 원재료인 향쑥(wormwood)에 환각성분이 들어가 있다는 이유로 20세기 초에 금지되었다가 21세기에 다시 판매가 허용된 술이다. 환각 성분이 들어가 있지만 압생트를 마시고 환각에 빠지려면 그전에 알코올 중독으로 죽을 정도로 술을 마셔야 하기 때문에 환각 성분은 큰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함유량에 대해서는 엄격한 검사를 받는다고 한다. 예전에 마신 압생트 이 박물관은 벨 에포크 시대의 압생트에 관심을 가진 언론인 마리-클로드 들라에이(Maire-Claude Delahaye, 1942~)가 세웠다. 좀 더

[서평] 앤드루 로버츠, <나폴레옹> 평전 [내부링크]

2023년 11월 22일(미국 기준) 개봉 예정인 리들리 스콧(Ridley Scott) 감독의 영화 <나폴레옹>의 예습 차원에서 나폴레옹 전기를 읽었다. 앤드루 로버츠(Andrew Roberts), 한은경·조행복 옮김 <나폴레옹> (파주 : 지식향연, 2022) 지은이 앤드루 로버츠는 영국의 대중 역사학자이자 언론인이고 보수당 소속 상원 의원이기도 하다.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 등 주로 전기물을 많이 저술한 사람이다. 아래 홈페이지에 가면 저서들을 볼 수가 있다. https://www.andrew-roberts.net/ 앤드루 로버츠는 이상하게도 서로 다른 이름으로 나폴레옹 전기 2권을 발간했다. 하나는 Napoleon the Great(Allen Lane, 2014)이고 다른 하나는 Napoleon : A Life(Penguin Books, 2014)이다. 사실 위의 두 책은 거의 같은 책이다. 서문(Introduction)이 다르고, Napoleon the

지베르니(Giverny) 여행 : 모네의 집과 물의 정원 [내부링크]

가는 길 지베르니에 있는 모네의 집은 대중교통이 아니라 반나절 코스 투어를 이용해 다녀왔다. 오후에 오랑주리 미술관을 예약을 했기 때문에 지베르니에 있는 클로드 모네(Claude Monet)의 집과 정원을 효율적으로 보려면 투어가 나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출발 시간이 트로카데로 광장(Place du Trocadéro)에서 8시였기 때문에 호텔을 일찍 나섰다. 7시 정도에 나왔더니 아직 파리의 거리는 일어나기 전인 것 같았다. 센 강 위를 가로질러 가는 6호선 창문으로 홀로, 조용히 서 있는 에펠탑을 볼 수 있었다. 파리의 이른 아침과 6호선 지하철에서 바라본 에펠탑 트로카데로 광장에서 모네의 집까지는 쉬지 않고 1시간 정도 걸리지만 중간에 큰 교통사고가 있어 도로가 정체되었다. 승용차 절반이 날아가는 큰 사고였다. 휴게소에 들려 잠시 커피와 크루아상으로 못한 아침 식사를 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아침에 마시는 커피의 강렬함은 무엇보다도 바꿀 수 없다. 출발한 지 1시간 50분 만에

프랑스 아미앵(Amiens) 여행 1 : 기본 정보 [내부링크]

아미앵 소개 아미앵은 파리에서 북쪽으로 139km 떨어져 있는 도시이다. 행정 구역 상으로는 오-드-프랑스 레지옹(région Hauts-de-France)의 솜 데파르트망(département de la Somme)에 속하고 있으며, 솜 데파르트망 자치 정부가 아미앵에 있다. 아미앵 위치 인구는 2020년 기준 13.4만 명으로 프랑스에서 27번째 규모이며, 오-드-프랑스 레지옹에서는 릴(Lile) 다음으로 인구가 많다. 광역 기준으로는 40만 명이 거주하고 있다. 프랑스에서 유네스코(Unesco)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최초의 도시이며, 솜(Somme) 강 운하로 <북부의 작은 베네치아(petite Venise du Nord)>로 불리기도 한다. 솜 운하 역사적으로 아미앵은 3개의 조약이 체결된 곳으로 유명하다. 1279년 프랑스 왕 필리프 3세(Philippe III)와 영국 왕 에드워드 1세(Edward I)가 처음으로 아미앵에서 분쟁을 종식시키는 조약을 체결했다. 두 번째 조약

프랑스 아미앵(Amiens) 여행 2 : 아미앵 대성당(Cathédrale Notre-Dame d'Amiens) [내부링크]

아미앵은 여행 측면에서 세 가지 주제를 가진 도시이다. 아미앵 대성당(Cathédrale Notre-Dame d'Amiens), 쥘 베른 박물관(Maison de Jules Verne), 제1차 세계대전이다. 아미앵 대성당은 중세 고딕 양식의 절정을 보여준다. 쥘 베른 박물관은 미래에 대한 낙관과 진보를 확신하는 벨 에포크(Belle Époque)를 상징한다. 반면 제1차 세계대전은 벨 에포크가 맞이한 파국을 보여준다. 이것을 염두에 두고 아미앵을 방문해 보자. 간략한 역사 여타 프랑스의 고딕 성당과 마찬가지로 아미앵 대성당이 있던 자리에는 원래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이 자리 잡고 있었다. 1137년에서 1152년 사이에 이 로마네스크 성당이 건설되었다고 한다. 아미앵의 로마네스크 성당은 제4차 십자군이 콘스탄티노플을 약탈하는 과정에서 흘러나온 세례 요한의 머리*를 구입함으로써 성 유물을 가진 성당으로 유명해졌다. * 세례 요한의 머리는 아미앵 대성당 뿐만 아니라 다른 프랑스 수도원

안다즈(Andaz) 서울 강남 호텔 숙박(조식, 피트니스) 후기 [내부링크]

국내외 여행을 하면서 이용한 월드 오브 하얏트(World of Hyatt) 포인트가 23,000점이 쌓였다. 이것을 어떻게 사용할까 고민하다가 그나마 집에서 가까운 안다즈(Andaz) 서울강남 호텔 호캉스를 즐기기로 했다. 1박에 2만점이 소요되어 1박만 할 수 있어서 조금은 아쉽기는 했다. 지하철 3호선 압구정역 3번 출구와 호텔로 통하는 길이 연결되어 있어 접근성이 좋았다. 게다가 현대백화점 압구정점과도 매우 가까워 간식 등 필요 물품을 구매하기도 편리했다. 지하철 3호선 3번 출구와 연결된 안다즈 호텔 다만, 건물 지하에서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게 되면 상업시설 1층으로 연결되어 TWG Tea 압구정 안다즈점으로 길이 나있으므로, 호텔 로비로 이동하려면 다시 지하에서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야 한다. 호텔 체크인은 15시, 체크아웃은 11시였다. 우리는 오후 3시경에 도착했는데 잠깐 대기하는 동안 웰컴티가 제공되었고, 로비에서 맞이해주는 직원들이 매우 친절했다. 호텔 분위기(객실, 복

프랑스 아미앵(Amiens) 여행 3 : 쥘 베른 박물관과 제1차 세계대전 [내부링크]

아미앵은 여행 측면에서 세 가지 주제를 가진 도시이다. 아미앵 대성당(Cathédrale Notre-Dame d'Amiens), 쥘 베른 박물관(Maison de Jules Verne), 제1차 세계대전이다. 아미앵 대성당은 중세 고딕 양식의 절정을 보여준다. 쥘 베른 박물관은 미래에 대한 낙관과 진보를 확신하는 벨 에포크(Belle Époque)를 상징한다. 반면 제1차 세계대전은 벨 에포크가 맞이한 파국을 보여준다. 이것을 염두에 두고 아미앵을 방문해 보자. 쥘 베른 박물관(Maison de Jules Verne) 간략한 소개 쥘 베른은 1828년 낭트(Nantes)에서 태어났다. 변호사였던 아버지는 아들도 법조인의 길을 걷기를 원해서 쥘 베른도 법학 학위를 받게 된다. 쥘 베른의 학위증 하지만 아버지의 기대와 달리 알렉상드르 뒤마(Alexandre Dumas) 등과 교류하면서 1851년 <멕시코에서의 드라마(Drame au Mexique)>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소설가의 길로 들

프랑스 릴(Lille) 여행 2 : 시내 구경, 식당, 카페 [내부링크]

파리 북역(Gare du Nord)에서 10시 12분 TGV를 탔다. 1시간 정도 걸려서 릴에 도착을 했다. 역을 나서니 꽤 거센 비가 내리고 있었다. 릴과 아미앵(Amiens)을 방문한 날은 한 달간의 프랑스 여행 중 날씨가 가장 좋지 않았다. 루앙을 갔을 때도 비가 강하게 내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오후에는 날씨가 개어 파란 하늘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릴에서는 그런 행운은 찾아오지 않았다. 릴은 요새 건축으로 이름이 높은 보방 남작(Marquis de Vauban, 1633~1707)이 만든 릴 요새(Citadelle de Lille)과 여러 정원들이 있어 볼 것이 많았다. 또한 시트로앵(Citroën) 컨버터블 차를 타고 시내를 구경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비가 강하게 와서 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릴 중심부만 돌아다니기로 결정했다. * 시트로앵 투어 https://www.getyourguide.fr/lille-l643/lille-visite-touristique-en-citro

프랑스 릴(Lille) 여행 3 : 릴 미술관(Palais des Beaux-Arts de Lille) [내부링크]

소개 릴 미술관은 1809년에 개관을 한 유서 깊은 미술관이다. 규모로 따지면 프랑스에서 루브르 박물관에 이은 2번째 미술관이라고 한다. 릴 미술관 전경 지금 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이 건물은 1882년에 건설이 시작되어 1889년에 완공되었다. 궁전(Palais)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아름다운 외관을 가지고 있으며 내부는 외부는 지상 2층과 지하 1층으로 되어 있다. 1층 입장권을 판매하는 곳 관람료는 7유로이고, 할인 조건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은 4유로이다. 그리고 매달 첫 번째 일요일은 무료이다. 가방 등 짐 보관 장소도 있다. 입장권(왼쪽)과 가방 보관증(오른쪽) 선사 및 고대 유물부터 20세기 회회까지 전시되고 있었지만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중세와 르네상스 작품과 19세기 이후 회화 작품이었다. 간단한 층별 배치는 다음과 같다 층 지하 1층 고대/중세/르네상스 작품, 도시 모형(Plans-reliefs) 지상 1층 조각상, 도자기 전시실 지상 2층 16세기

프랑스 루앙(Rouen) 여행 2 : 루앙 대성당, 잔다르크 성당, 대시계, 센 강, 해산물 맛집 [내부링크]

루앙 대성당(Cathédrale Notre-Dame de Rouen) 연작 사진 루앙 대성당은 후기 고딕 양식으로도 의미가 있지만 클로드 모네(Claude Monet)의 연작 그림으로도 더 유명하다고 할 수 있다. 모네의 연작 그림 이번 루앙 여행에서 나도 본의 아니게 루앙 대성당 연작 사진을 찍게 되었다. 루앙 중심부가 좁다 보니 루앙 대성당을 3번이나 지나가게 되었고 그 때마다 날씨기 달랐기 때문이었다. 모네가 빛의 작용으로 어떻게 성당이 다르게 보이는지를 화폭에 세심하게 담고자 했다면, 내 사진의 메시지는 단순하다. '3월의 루앙, 프랑스 북부 날씨는 변덕스럽다' 이다. 아래 사진은 약한 비가 내릴 때 사진이다. 이 사진을 찍고 얼마 지나지 않아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다음 사진이 폭우를 배경으로 한 사진이다. 하지만 사진에는 비 내리는 모습은 담기지 않았고 성당 앞에 급하게 비를 피하는 사람들의 모습만이 찍혀서 비가 많이 오는 것을 그나마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약한 비

프랑스 릴(Lille) 여행 : 기본 정보 [내부링크]

릴(Lille) 소개 릴은 프랑스 북동부, 벨기에 국경에 가까이 있는 도시이다. 행정 구역 상으로는 오-드-프랑스 레지옹(région Hauts-de-France)의 노르(北) 데파르트망(département du Nord)의 중심 도시이다. 레지옹과 데파르트망의 자치 정부가 릴에 소재하고 있다. 릴 중심가 그랑 플라스(Grand Place) 역으로 이어지는 길 또한 프랑스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20-21 시즌에 파리 생제르맹(Paris Saint-Germain)을 누르고 우승한 LSOC(Lille Olympique Sporting Club)의 연고지로 알려져 있다. LSOC는 AS모나코(Monaco, 16~17 우승)와 더불어 2010년대 이후 프랑스 축구를 지배하던 유이하게 파리 생제르맹 우승 독식을 저지한 팀이다. 인구는 2020년 기준 23.6만 명으로 프랑스에서 10위이다. 하지만 광역으로 확장하면 105만 명으로 파리, 리옹, 마르세유에 이은 4번째 광역 도시이고,

꼬냑(Cognac) 여행 3 : 헤네시(Hennessy) 투어 [내부링크]

헤네시(Hennessy)는 꼬냑 시장 점유율 40~50%를 차지하는 그야말로 꼬냑의 대표 브랜드이다. 또한 세계적인 명품 그룹인 LVMH(Louis Vutton, Moët & Chandon, Hennessy)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다. 프랑스 꼬냑의 대표이지만 창립자는 아일랜드 출신의 군인인 리처드 헤네시(Richard Hennessy, 1724~1800)이다. 아일랜드는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이에 정치적으로 종교적으로 반항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같은 카톨릭 국가인 프랑스로 망명해 영국에 대항해 싸운 사람들이 많았다. 리처드 헤네시도 그중의 한 사람이었고 프랑스 육군 산하의 아일랜드 여단(Brigade irlandaise)에서 근무를 했다. 헤네시가 참전한 유명한 전투가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1740~1748)에서 벌어진 폰테노이(Fontenoy) 전투(1745년)였다. 군대에서 번 돈을 바탕으로 1765년에 꼬냑 회사를 설립함으로써 헤네시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리처

파리 대중교통 : 꼭 타봐야 하는 노선(지하철 6호선, 72번과 95번 버스) [내부링크]

서울에는 지하철과 버스만이 있는 것과는 달리 파리를 포함한 일 드 프랑스(Îld-de-France)에는 지하철(métro), RER, 버스, 트랑질리앙(Trainsilen), 트램(Tram)의 다양한 교통수단이 있다. 여기에 일 드 프랑스를 운행하는 지역 기차인 TER가 있으니 총 6개의 교통수단이 있는 셈이다. TER를 제외한 나머지 교통수단에 대한 설명과 함께 한 번쯤 타보면 좋은 노선을 소개하고자 한다. 파리 지하철, RER, 트램 노선도(출처 : RATP) 지하철(métro) 외래어 표기법으로는 <메트로>, 최대한 프랑스어 발음에 가깝게 표기하자면 <메트호>인 파리 지하철은 1900년 7월 19일에 개통되었다. 런던(1863), 부다페스트(1896), 빈(1898)에 이은 세계에서 4번째로 개통된 매우 유서 있는 지하철이라고 할 수 있다. 파리 지하철은 1호선부터 14호선까지 있다. 총 길이는 227km이고 308개의 역이 있다. 파리 지하철은 서울 지하철에 비하면 노선별 길

랭스(Reims)와 에페르네(Épernay) 여행 : 기본 정보 [내부링크]

스파클링 와인의 대명사인 샹파뉴(Champagne), 영어로는 샴페인을 생산하는 대표 도시가 랭스와 에페르네이다. 이 두 도시는 모두 프랑스의 북동부에 자리를 잡고 있으며 행정구역 상으로는 그랑데스트(Grand Est) 레지옹(région), 마른(Marne) 데파르망(département)에 속하고 있다. 랭스(Reims) 기본 정보 외래어 표기로는 랭스로 표시되지만, 프랑스어 발음에 가깝게 표기하자면 <항스>라고 할 수 있다. 역시나 한국 사람이 발음하기 어려운 R이 들어가서 정확한 도시명을 발음하기 힘들다. 랭스, 대관식과 샹퍄뉴의 도시 랭스의 인구는 2020년 기준 18만명으로 프랑스에서는 12번째 도시이고 마른 데파트망에서는 가장 큰 도시이다. 랭스는 샹파뉴로도 유명하지만 역사적으로는 프랑스 역대 국왕이 랭스 대성당(la cathédrale Notre-Dame de Reims)에서 대관식을 거행한 도시로도 유명하다. 그래서 도시 별명이 <대관식의 도시(la cité des

랭스(Reims)와 에페르네(Épernay) 여행 2 : 뵈브 클리코(샴페인 투어) [내부링크]

뵈브 클리코(Veuve Cliquot) 역사 노란색 라벨을 둘러싼 샴페인으로 유명한 <뵈브 클리코(Veuve Clicquot>는 직역을 하자면 '과부 클리코'이다. 회사 이름이 이렇게 된 이유는 27세의 나이에 남편을 잃고 과부가 된 바브-니콜 클리코 퐁샤르당(Barbe-Nicole Clicquot-Ponsardin, 1777~1866) 부인이 이 회사를 세계적인 샴페인 회사로 키웠기 때문이다. 마담 퐁샤르당-클리코 초상화. 오른쪽 그림에 있는 소녀는 증손녀 안느 드 로스슈아르-모르마르(Anne de Rochechouart-Mortemart)이다. 원래 이 회사는 필리프 클리코-뮈롱(Philippe Clicquot-Muiron)이 1772년에 세웠다. 필리프 클리코-뮈롱에게는 프랑수와 클리코(François Clicquot)라는 아들이 있었고 1798년에 마담 퐁샤르당과 결혼을 했다. 프랑수와 클리코는 1801년 아버지로부터 사업을 이어받았으나 1805년에 31세의 나이로 요절을 하

랭스(Reims)와 에페르네(Épernay) 여행 3 : 떼땅제(샴페인 투어) [내부링크]

떼땅제(Taittanger) 역사 떼땅제는 1734년 자크 푸르노(Jacques Fourneaux)가 설립한 샴페인 회사를 기원으로 한다. 자크 푸르노는 베네딕트 수도원(abbayes bénédictines)과 밀접하게 일을 했다고 한다. 제1차 세계대전 후에는 사업체를 13세기에 건립된 샹파뉴 백작(Comté de Champagne)*의 저택으로 옮긴다. 샹파뉴 백작 저택 13세기에 건립된 샹파뉴 백작 저택이라는 안내 명판 샹파뉴 백작가 저택으로의 이전은 떼땅제에게는 중요한 마케팅 수단을 제공해 주었다. 왜냐하면 자신들의 샴페인 사업 기원을 샹파뉴 백작이었던 티보 4세(Thibault IV, 1201~1253)*에게 찾고 있기 때문이다. 사업 기원의 구체적 내용은 투어를 다룰 때 다시 설명하고자 한다. * 티보 4세는 스페인에 위치하던 나바르(Navarre) 왕이기도 했다. 왕으로는 티보 1세(Thibault Ier)로 불렸다. 나바르의 왕 중에 가장 유명한 사람은 위그노(Huge

랭스(Reims)와 에페르네(Épernay) 여행 4 : 모엣 샹동(샴페인 투어) [내부링크]

모엣 샹동(Moët & Chandon)의 역사 모엣 샹동은 1743년 에페르네에서 클로드 모엣(Claude Moët)가 모엣&콤파니(Moët&Cie)라는 이름으로 설립했다. 설립하고 나서 파리로 샴페인을 파는 데 주력했고 루이 15세(Louis XV) 치하의 샴페인 붐과 일치하여 회사가 성장하기 시작했다. 특히 모엣 샹동 샴페인을 루이 15세의 애첩(maîresse-en-titre)였던 퐁파두르 부인(Madame de Pompadour)이 좋아했다고 한다. 퐁파두르 부인 퐁파두르 부인은 샴페인을 너무도 사랑해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고 한다. 샴페인은 마신 후에도 여자를 아름답게 만드는 유일한 포도주(와인)이다. (Le champagne est le seul vin qui laisse les femmes belles après boire.) 1792년에 클로도 모엣의 손자인 장-레미 모엣(Jean-Rémy Moët, 1758-1841)이 경영권을 물려받는다. 장-레미 모엣은 자신의

랭스(Reims)와 에페르네(Épernay) 여행 5 : 메르시에(샴페인 투어) [내부링크]

메르시에(Mercier) 역사 18세기에 창립된 뵈브 클리코(Veuve Clicquot 1772), 모엣 샹동(Moët Chandon 1743) 떼땅제(Taittanger, 1734)와 달리 메르시에는 상대적으로 젊은(?) 샴페인 회사이다. 외젠 메르시에(Eugène Mercier, 1838~1904)가 프랑스 제2제국 시절인 1858년에 설립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3개 회사에 비해 젊은 편인 것이지 절대적 기준에서는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회사라고 할 수 있다. 외젠 메르시에 외젠 메르시에는 전형적으로 자수 성가를 한 사람이다. 외젠 메르시에는 1838년에 혼외자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절대 외젠 메르시에가 자신의 자식이라고 인정을 하지 않았고, 그의 어머니, 잔 마르게리트 메르시에(Jeane Marguerite Mercier, 1816~1885)는 세탁소와 음식점에서 일을 하면서 홀로 외젠 메르시에를 키웠다. 외젠 메르시에도 일찍 일을 시작했고 샴페인 회사를 차리겠다는 희망을

랭스(Reims)와 에페르네(Épernay) 여행 6 : 에페르네 시내 구경 및 마르(Marc) 구입 [내부링크]

에페르네는 당일 일정이었고 모엣 샹동(Moët & Chandon) 투어가 10시 20분, 메르시에(Mercier) 투어가 14시였다. 이러다 보니 에페르네 시내를 볼 시간은 많이 없었고 모엣 샹동과 메르시에 가는 길에 있는 시청, 샹파뉴 거리(Avenue de Champagne) 정도를 볼 수 있었다. 에페르네 역, 성당, 시청 공원 에페르네 역은 겉에서 보기에는 인구 2만 명 도시에 있는 역치고는 큰 규모로 보였다. 내부는 들어가 보지 못했다. 우리가 연금 개혁 문제로 철도 파업이 있어 TER가 아니라 다른 교통수단으로 에페르네를 왔기 때문이었다. 에페르네 역 역 인근에는 아담한 크기의 에페르네 성당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프랑스 성당 중에서는 꽤 최근에 만들어졌다. 1897년 11월에 공사가 시작되어 제1차 세계대전 중인 1915년 9월에 완공되었으나 1917년에 독일군 포격으로 스테인드글라스가 손상되었다. 1918년에는 하부 구조, 파사드(façade)가 파괴되는 등 더 큰 피

랭스(Reims)와 에페르네(Épernay) 여행 7 : 랭스 대성당(Cathédrale Notre-Dame de Reims) [내부링크]

프랑스 3대 고딕 성당 랭스 대성당은 샤르트르(Chartres) 대성당, 아미앵(Amiens) 대성당과 더불어 중세 고딕 전성기 양식을 대표하는 성당이다. 파리 노트르담 성당이 더 유명하기는 하지만 건축 양식 측면에서 파리 노트르담 성당은 고딕 초기라고 한다. 랭스 대성당 프랑스 국왕 대관식(Sacre des rois)이 열린 곳 건축 양식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지만 랭스 대성당이 가장 의미가 있는 것은 역대 프랑스 국왕이 대관식을 거행한 장소라는 점이다. 프랑스 국왕이 신으로부터 은총을 받고 자신의 정당성을 확인하는 장소가 바로 랭스 대성당이다. 랭스에서 대관식을 거행한 프랑스 국왕 명단 프랑크 왕국의 창시자 클로비스 1세(Clovis Ier, 466~511)의 세례와 샤를 7세(Charles VII, 1403~1461)의 대관식이 가장 역사적으로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클로비스 1세의 경우는 정확하게 대관식이 아니라 자신의 병사 3,000명과 함께 한 세례이다. 하지만 클로비스

랭스(Reims)와 에페르네(Épernay) 여행 8 : 랭스 시내, 맛집, 호텔 [내부링크]

시내 구경 랭스는 툴루즈(Toulouse)나 보르도(Bordeaux)에 비해 작은 도시이고, 한편으로는 그 두 도시보다 현대적이었다. 랭스 대성당 주변에 고풍스러운 건물이 있는 편이지만 이 역시도 툴루즈나 보르도에 비하면 오래되지는 않았다. 그 이유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많은 건물이 파괴되었고 1920년대에 많이 재건되었기 때문이다. 랭스 시내 중심부에는 아래와 같은 고풍스러운 건물이 있지만 트램을 타고 조금만 중심부를 벗어나도 현대적 건물이 보인다. 아래 두 번째 사진은 랭스 <오페라 카테드랄(Opéra Cathédrale)>역에서 트램으로 4정거장 떨어진 곳에 있는 <랭스 천체 투영관(Planétarium de Reims)> 인근 사진이다. 분위가 많이 다름을 알 수 있다. 시내 중심부인 오페라 카테드랄 역(왼쪽)과 랭스 천체 투영관(오른쪽) 아래 지도가 랭스의 중심부라고 할 수 있다. 거리를 천천히 돌아다녀도 2시간 정도면 충분히 볼 수 있다. 랭스 중심부 위의 지도에서 빨간

프랑스 교통수단: 블라블라카(BlaBlaCar)와 몽트랑스포닷컴(monTransport.com) [내부링크]

랭스(Reims)에서 에페르네(Épernay)를 가려면 랭스 중앙역에서 TER를 타면 된다. 2시간에 1대가 있어 기차가 자주 있는 것은 아니지만 소요 시간은 35분 밖에 안 걸린다. 기차 시간만 잘 맞춘다면 대중교통으로 가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공교롭게도 우리가 에페르네를 가는 날에 연금개혁 파업 때문에 모든 TER가 운행을 중단했다. 혹시나 버스가 있을까 하고 찾아보았지만 없었다. 택시를 부르거나 볼트, 우버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지만 100% 확실한 방법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에페르네를 갈 때는 문제가 없을 것 같지만 에페르네에서 돌아올 때 볼트나 우버를 이용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 그래서 대안으로 찾은 것이 블라블라카와 몽트랑스포닷컴이었다. 에페르네를 갈 때는 블라블라카를, 랭스로 돌아올 때는 몽트랑스포닷컴을 이용했다. 블라블라카가 저렴하기는 했지만 돌아올 때는 우리가 원하는 시간에 블라블라카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블라블라카(BlaBlaCar) : 유료 카풀 서비

파리 입성과 여행 후반부 계획 [내부링크]

2023년 3월 초부터 4월 초까지 35일 동안의 프랑스 여행을 정리하자면 전반부는 알코올 여행이었다. 암스테르담 하이네켄 박물관(Heineken Experience)를 시작으로 보르도와 생테밀리옹 와이너리 6개, 꼬냑 회사 2개, 샴페인 와이너리 4개를 방문하였다. 랭스 대성당에서의 미사를 계기로 알코올 여행을 마감하고 후반부 여행을 시작했다. 여행 후반부의 주제는 예술, 성당, 그리고 아름다운 자연이었다. 파리에서는 14박 15일을 체류했다. 파리로 이동하는 날과 파리를 떠나는 날을 제외한 13일을 온전히 여행에만 투자할 수 있었다. 이 기간 동안 프랑스 북부의 도시 5곳과 파리 근교 3곳 등을 방문할 수 있었다. 또한 파리 시내에서도 그동안 가보지 못한 지역을 탐방할 수 있었다. 주변 도시 여행 프랑스는 파리를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교통 체계가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어느 한 도시에서 다른 도시로 이동할 때는 파리를 거쳐가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보르도에서 랭스를 갈 때도 파리를

루앙(Rouen) 여행 : 기본 정보 [내부링크]

루앙 소개 루앙은 파리에서 북서쪽으로 122km에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 도시이다. 노르망디(Normandie) 레지옹(Région)과 센-마리팀(Seine-Maritime) 데파르트망(département)에 속하고 있으며, 레지옹과 데파르트망의 자치 정부가 모두 루앙에 위치하고 있다. 루앙의 인구는 2020년 기준 11.4만 명이다. 인구 규모로는 프랑스 전체에서 35번째이며, 노르망디 레지옹에서는 16.5만 명의 르아브르(Le Havre) 다음으로 큰 도시이다. 지리적으로 루앙은 파리와 센(Seine) 강으로 연결되어 있고 도시 중심부를 센 강이 관통하고 있다. 파리가 센 강을 중심으로 양쪽 모두 발전했다면 루앙은 센 강 우안, 즉 북쪽에 먼저 도시가 형성되고 나중에 남으로 확장되었다. 이 때문에 랭스 대성당과 같은 중세풍의 오랜 건물은 센 강 북쪽에서나 찾아볼 수 있고 남쪽은 현대적인 건물이 자리 잡고 있다. 루앙에서 본 센 강 역사적으로는 루앙은 911년부터 1204년까

파리 교통권(교통카드) 총정리 2부 : 최적의 교통권 선택 방법은? 나비고(Navigo) vs. 까르네(Carnet) [내부링크]

<파리 교통권(교통카드) 총정리 1부 : 기본 정보(까르네, 나비고 등)>에서 파리 교통권에 대해 알아보았다. https://blog.naver.com/french_75mm/223120245244 그러면 여행객 입장에서 파리와 그 주변을 여행할 때 최적의 교통권은 무엇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비고 1주일권(+α) VS. 까르네(+α) 사이의 선택이다. 모빌리스(Mobilis)와 같은 1일권은 보충적인 α에 들어가는 것이지 결코 주된 고려 대상이 될 수 없다. 1-5존 나비고 1주일권(Navigo Semaine)이 카드 보증금을 포함하여 35유로인데 1-5존 모빌리스(1일권)는 20.1유로로 가격 경쟁력에서 상대가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나비고 1주일권과 까르네를 선택할 때 고려 요소는 무엇인가? 아래와 같은 질문에 대한 답으로 자신의 여행에 가장 맞는 교통권이 무엇인지를 판별해 볼 수 있다. [기간 ①] 출도착을 포함해서 4일 이상인가? 1-5존 나비고 1주일권은 보증금

보르도 여행 9 : 보르도 공원, 지롱드 기념비, 보르도 대극장, 물의 거울, 아키텐 문 [내부링크]

보르도 공원(Jardin Public) 보르도 시내 중심부에는 거의 11헥타르에 달하는 <보르도 공원>이 자리를 잡고 있다. 축구장 넓이가 대략 0.7헥타르 정도 되니 거의 축구장 16개 정도의 면적인 셈이다. 보르도 공원 전경 보르도 공원 지도 짤막한 역사 18세기 당시 보르도 지방 장관인 루이-위르뱅 오베르 드 투르니(Louis-Urbain Aubert de Tourny, 1695-1760) 남작(marquis)이 보르도를 프랑스 왕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만들 생각으로 이 푸른 공원을 만들었다. 품질 낮은 포도밭과 길이 있던 이곳을 프랑스식 정원으로 조성했다고 한다. 그 후에 오랫동안 방치되었다가 1865년 보르도 인근 출신의 조경사 루이-베르나르 피셔(Louis-Bernad Fischer, 1810-1873)가 영국식 정원으로 다시 조성을 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35년에는 프랑스 역사 기념물로 선정되었고 2011년에는 프랑스에서 훌륭한 정원으로 꼽히기도 했다. 공원에

보르도 여행 10 : 생 앙드레 대성당, 시청, 야경 [내부링크]

생 앙드레 대성당(Cathédrale Saint-André de Bordeaux) 보르도 대성당이라고 할 수 있는 생 앙드레 대성당은 유럽의 유서 깊은 성당들이 그렇듯이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기록 상으로는 4세기부터 성당이 있었으며, 1096년에는 제1차 십자군 전쟁을 일으킨 교황 우르바노 2세(Urbanus II)*로부터 축성을 받기도 했다. * 한국에서는 우르반 2세로 알려져 있다. 원래는 로마네스크 형태의 성당이었으나, 보르도 대주교로 있다가 교황이 된 클레망 5세(Clément) 때 고딕 형태의 성당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클레망 5세의 자신의 고향에 대해 나름 신경을 쓴 결과라고 한다. 아비뇽 유수 시대를 연 교황이지만 샤토 파프 클레망(château Pape-Clément)이란 훌륭한 샤토와 아름다운 성당을 보르도에 남긴 것을 보면 고향에 대한 마음은 따뜻했다고 할 수 있다. 성당 북쪽 면 성당 동쪽 면, 왼쪽에 페리-베르랑 탑(Tour Pey-Berland)이 서있다

보르도 여행 11 : 시테 뒤 뱅(보르도 와인 박물관) [내부링크]

개요 보르도 와인 박물관(La Cité du Vin)은 보르도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중심부에서 약간 떨어져 있지만 트램 B선을 타면 쉽게 갈 수 있다. 보르도 와인 박물관은 2016년 5월 31일에 개관을 했는데, 원래 이 자리는 원래 보르도 항구의 제철소가 있던 곳이었다고 한다. 건물 모양이 독특하고 아름다웠다. 박물관의 설명에 따르면 건물 디자인을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 포도나무의 울퉁불퉁한 줄기, 잔에서 소용돌이 치는 와인, 가론 강의 소용돌이. 건물의 모든 세부 묘사는 와인의 영혼과 액체의 요소를 연상시킵니다. Cep noueux de la vigne, vin qui tourne dans le verre, remous de la Garonne. Chaque détail de l’architecture évoque l’âme du vin et l’élément liquide 금번 프랑스 여행에서 접한 건물 중에서는 파리의 루비 비통(Louis Vuitton) 재단 건물과

보르도 여행 12: 해산물 맛집과 카푸친 시장 [내부링크]

해산물 맛집 : 카바농 마랭(Le Cabanon Marin) 보르도에 9박 10일을 있었지만 보르도 시내보다는 외부로 와이너리 투어를 하는 날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보르도 시내에서 제대로 된 저녁을 먹은 적은 한 번밖에는 없었다. 그 한 번의 저녁 식사를 한 곳이 카바농 마랭이었다. 카바농 마랭은 부르스 광장(Place de la Bourse)과 피에르 다리(Pont de Pierre) 중간에 자리를 잡고 있다. 식당은 해산물을 파는 곳과 홍합 요리만을 파는 곳으로 나누어져 있다. 식당 전경 원래는 주말에 방문하고 싶었으나, 예약이 꽉 차고 사람이 많아 평일 저녁 7시 오픈 시간에 예약하고 방문하였다. 덕분에 손님이 많지 않아 여유로우면서도 조용하게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식당 내부 플라토 크로지에르(Plateau Crosière)를 주문했는데, 이 메뉴는 랍스터와 게 중 선택할 수 있다. 게는 한국에서 많이 먹어 봤기 때문에 랍스터를 선택했다. 랍스터가 들어간 플라토 크로지에르

보르도 여행 13 : 카눌레 맛집, 카페, 아이스크림 [내부링크]

카눌레(Canelé) 외래어 표기로는 <카늘레>, 최대한 프랑스어 발음에 가깝게 표현하자면 <꺄늘레>이지만 한국에서는 카눌레로 표현하기 때문에 이 글에서도 카눌레로 쓴다. 카눌레는 보르도를 대표하는 디저트 과자(gâteau)이다. 하지만 그 기원은 불확실하다. 한 전설에 따르면 보르도에 있었던 <아농시아드 수녀원(Couvent des Annonciades)>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먹이기 위한 과자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수녀들은 와인의 불순물을 제거할 때 흰자를 사용하고 남은 노른자를 수거해서 밀과 섞어서 과자를 만들었다. 보르도가 무역항이었기 때문에 수입되는 럼(Rum)과 바닐라를 첨가했다고 한다. 하지만 프랑스 혁명으로 수녀원이 1791년에 문을 닫으면서 이 레시피는 사라졌기 때문에 오늘날 이 전설을 확인할 방법은 없다. 그 이후로도 카눌레로 추정되는 레시피는 있다고 하지만 사실상 카눌레가 보르도를 대표하는 디저트가 된 것은 1980년대 들어서이다. 이런 측면에서 카눌레는 그 이름

아르카숑(Arcachon)과 필라 사구(Dune du Pilat) 여행 1 : 기본 정보 및 가는 법 [내부링크]

아르카숑과 필라 사구 기본 정보 아르카숑은 2020년 기준 11,076명의 소도시로 보르도에서 남서쪽으로 55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아르카숑 남쪽으로 필라 사구가 자리 잡고 있다. 아르카숑과 필라 사구 위치 아르카숑(Arcachon) 19세기가 시작될 때까지는 아르카숑은 어부들과 나무에서 수지를 채취하는 사람들만 사는 깡촌에 불과했다. 1841년 아르카숑 남쪽으로 보르도까지 이어지는 철도가 개통되면서 아르카숑은 관광 및 휴양 도시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1857년 나폴레옹 3세에 의해 독립 행정 구역이 되었다. 아르카숑 시내 아르카숑 해변 산책길 나폴레옹 3세 칙령으로 독립 행정구가 된 것을 기념하는 비 아르카숑은 또한 유럽 최대의 굴 양식장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굴 양식도 19세기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전염병으로 양식하던 굴 품종이 모두 전멸하는 차례의 위기를 겪기도 했다. 원래는 아르카숑 토종 굴인 <그라베트(gravette)>를 양식했지만

아르카숑(Arcachon)과 필라 사구(Dune du Pilat) 여행 2 : 모래 언덕, 대서양, 아르카숑 시내 [내부링크]

아르카숑 도착 아르카숑 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기차는 신형의 2층 구조로 내부가 깔끔했다. 보르도 생장 역(Gare de Bordeaux Saint-Jean)에서 50분을 달려 아르카숑에 도착했다. 우리가 탄 객차에는 그렇게 사람이 많지 않았지만 아르카숑 역에 도착하니 꽤 많은 사람이 내렸다. 역 앞으로 나오니 우리가 도착하기 얼마 전까지 비가 내린 것 같았다. 아르카숑 역 역 앞 버스 정류장에서 노선도와 시간표를 보는 큰 배낭을 멘 여행객을 봤다. 필라 사구에 가는 사람들이라면 우리처럼 당황했을 것이다. 이날은 일요일이라 필라 사구를 가는 3번 버스가 운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찍 도착했기 때문에 커피를 마시고 움직이기로 했다. 영업을 하는 카페를 검색해 보니 바닷가 쪽으로 많이 있었다. 역에서 조금만 걸어가니 아르카숑 만이 눈앞에 펼쳐졌다. 위를 쳐다보니 비를 가져온 먹구름과 푸른 하늘이 섞여 있었다. 이른 아침의 아르카숑 시내 거리 먹구름이 덮인 아르카숑 해안 검은 대서양

꼬냑(Cognac) 여행 : 기본 정보, 시내 탐방, 앙굴렘(Angoulême) [내부링크]

기본 정보 꼬냑(Cognac)은 도시 이름이자 브랜디(Brandy)의 한 종류를 의미한다. 술 이름으로서 꼬냑은 그 명성이 높아 브랜디 자체를 의미하는 표현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샹파뉴(삼페인)이 스파클링 와인의 대명사가 된 것과 유사하다. 꼬냑은 보르도(Bordeaux)와 마찬가지로 누벨 아키텐(Nouvelle-Acqutaine) 레지옹(Région)에 속한 도시이다. 인구는 2020년 기준 18,606명으로 브랜디 꼬냑의 명성에 비해서는 작은 도시이다. 인구 4.7만 명의 카르카손(Carcassone) 보다 작은 규모이다. 꼬냑의 샤랑트(Charente) 강 사실 꼬냑은 파리나 보르도에서 대중교통으로 가기 편한 도시는 아니다. 직통열차는 없어 환승을 통해서만 갈 수 있다. 파리에서 출발하면 주로 앙굴렘(Angoulême)에서 환승하고 보르도에서 출발하면 생트(Saintes)나 앙굴렘에서 환승한다. 환승도 기차가 아니라 SNCF에서 운행하는 버스를 타야 한다. 도시가 작다 보니 시

꼬냑 여행 2 : 므코프(Meukow) 꼬냑 투어 [내부링크]

가성비 측면에서 최고의 투어 이번 여행을 하면서 보르도 지역의 와이너리 6곳, 랭스의 샹파뉴(샴페인) 회사 4곳, 꼬냑 회사 2곳을 방문했다. 대부분 기대 이상의 투어여서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비용 대비 최고는 므코프 투어였다. 므코프 꼬냑 본관과 중정 투어 비용은 인당 10유로라는 믿을 수 없는 가격이었다! 공식 홈페이지 설명으로는 1시간이지만, 실제로는 1시간 30분 넘게 동안 투어가 진행되었다. 가이드의 전문적인 설명뿐만 아니라 창문이 디스플레이로 변하는 최첨단 디지털 기기가 사용되어 꼬냑에 대해 이해를 높이기에는 최고의 시간이었다. 여기에 XO 급의 꼬냑 시음이 포함되어 있다. 더구나 우리는 비수기에 투어를 신청하다 보니 방문자가 우리 밖에 없어서 자연스럽게 프라이빗 투어가 되었다. 정말 10유로의 비용으로 프라이빗 투어를 하는 행운을 누리게 된 셈이었다. 간략한 소개 므코프 꼬냑(Cognac Meukow)은 실레시아(Silesia) 출신의 아우구스트-크리스토프 므

보르도 여행 6 : 샤토 시랑(메독 와이너리 투어) [내부링크]

메독 와이너라 투어의 마지막 코스는 샤토 시랑(Château Siran)이었다. 여기는 그동안 방문했던 샤토 중에서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를 가진 곳이었다. 툴루즈-로트렉(Toulouse-Lautrec) 가문이 소유했던 샤토 샤토 시랑에서 와인이 제조되기 시작된 시기는 17세기였다. 그때는 보스크(Bosq) 남작(Baron) 가문의 소유였으나 결혼으로 라 로크 부이약(La Roque-Bouillac) 백작(Comte) 가문의 샤토가 되었다. 1808년 라 로크 부이약 가문의 딸인 잔느 아델(Jeanne Adèle)이 알퐁스 툴루즈-로트렉(Alphonse Toulouse Lautrec) 백작과 결혼하면서 툴루즈-로트렉 가문의 샤토가 되었다. 툴루즈에 있을 때 알비(Albi)에 있는 툴루즈-로트렉 미술관을 못 가서 아쉬웠는데 이렇게라도 툴루즈-로트렉과 관련된 곳을 방문하게 되어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아쉽게도 지금은 더 이상 툴루즈-로트렉 가문이 소유하고 있지 않다고 한다. 툴루즈-로트렉

보르도 여행 7 : 메독 포이약 마을, 라파예트, 파블로 네루다 [내부링크]

와인의 성지, 포이약(Pauillac) 마을 포이약*은 인구 5,084명(2020년 기준) 작은 마을이다. 하지만 1855년 그랑 크뤼 클라쎄(Grand Cru Classé) 1등급(Premier Cru) 샤토가 3개가 몰려 있어 보르도 와인을 대표하는 곳이다. 샤토 라투르(Château Latour), 샤토 무통-로칠드(Château Mouton-Rothschild), 샤토 라피트-로칠드(Château Lafite-Rothschild)가 포이약에 자리를 잡고 있다. * 최대한 프랑스어 발음 그대로 표기하자면 '뽀이약'이 된다. 포이약 마을 강가 전경, 포이약의 자부심인 와인을 상징하는 와인병이 서 있다. 하지만 우리가 이 마을에 온 것은 이들 샤토를 방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점심 식사를 위해서였다. 와인에 대한 공력을 쌓고 무엇보다 돈을 더 축적한 후에 보르도 5대 샤토 방문을 기약하기로 했다. La Salamandre에서의 점심 식사 우리를 안내해 준 가이드가 추천해 준 식당은

보르도 여행 8 : 샤토 파프 클레망(보르도 와이너리 투어) [내부링크]

보르도 시내에서 대중교통으로 갈 수 있는 샤토 샤토 파프 클레망(Château Pape Clément)의 가장 큰 장점은 보르도 시내에서 트램 B선이나 23번 또는 24번 버스를 타고 갈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조금 걷기는 해야 한다. 샤토 파프 클레망 위치 지리상으로는 1등급 그랑 크뤼 클라쎄(Grand Cru Classé)인 샤토 오브리옹(Château Haut-Brion)이 가깝기는 하지만 여기는 방문하고 싶다고 갈 수 있는 곳은 아니다. 샤토 파프 클레망 정문 또 하나 장점은 내가 본 와이너리 중에 가장 다채로운 투어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는 것이다. 공식 홈페이지에서 제공하는 프로그램은 15가지이다. 간단하게 차를 마실 수도 있고 자신만의 와인을 만들 수도 있고 캐비어 아니면 정찬을 들면서 와인을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도 있다. 샤토 파프 클레망 투어 프로그램 ※ 자세한 투어 프로그램은 아래 링크를 참조 https://www.chateau-pape-clement.fr/en/v

파리 교통권(교통카드) 총정리 1부 : 기본 정보(까르네, 나비고 등) [내부링크]

들어가며 여행 카페 등에서 보면 파리 교통권에 대해 어려워하거나 혼란스러워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 파리 교통권에 대해서 총정리를 해보고자 한다. 크게 2부로 나누어서 작성을 할 예정이다. 1부에서 파리 교통권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를 알아보고, 2부에서는 그러면 여행 기간, 목적, 장소에 따라 최적의 교통권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아래 내용은 프랑스 <일 드 프랑스 교통공사(Île-de-France Mobilités)>의 공식 홈페이지 내용을 기반으로 작성을 했음을 밝혀 둔다. 그리고 기준은 2023년이다. 영어 홈페이지 : https://www.iledefrance-mobilites.fr/en 프랑스어 홈페이지 : https://www.iledefrance-mobilites.fr/ 참고로 일 드 프랑스(Île-de-France)는 파리(Paris)와 그 주변의 7개 데파르망(département)으로 구성된 레지옹(région)이다. 2023년 기준 1

보르도 여행 2 : 샤토 가데 방문(생테밀리옹 와이너리 투어) [내부링크]

샤토 가데(Château Guadet)에 대한 간략한 소개 샤토 가데는 한국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생테밀리옹 그랑 크뤼 클라쎄(Grand Cru Classé) 71개 중의 하나이다. 2006년에 그랑 크뤼 클라쎄에서 탈락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으나 2012년에 다시 그랑 크뤼 클라쎄에 복귀하여 계속 그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샤토 가데 포도밭 전경 샤토 가데는 리냑(Lignac) 가문이 7대를 이어서 운영하고 있는 전형적인 가족 경영 샤토이다. 원래 샤토 가데는 프랑스 혁명 당시 생테밀리옹 출신의 유력 정치인인 마르게리트-엘리 가데(Marguerite-Élie Guadet1758~1794)를 배출한 가데 가문이 소유하고 있었다. 마르게리트-엘리 가데는 프랑스 혁명 당시 유력한 온건파 정치인 중 한 명이었으나, 공포정치가 시작되면서 결국 처형되고 말았다. 그 이후에도 샤토는 가데 가문 소속이었으나 1844년 리냑 가문이 인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가데 가문은 거리 이름이 붙여

보르도 여행 3 : 생테밀리옹 시내, 주변 샤토, 식당 [내부링크]

중세 시대의 건물이 잘 보존되어 있어서 1999년에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생테밀리옹(Saint-Émilion)은 2020년 기준 1,844명의 작은 마을이다. 하지만 와인에 있어서는 5대 샤토로 대변되는 메독(Médoc) 보다 생테밀리옹이 역사적으로 더 유서 깊은 곳이다. 생테밀리옹은 로마 제국 시절부터 포도 재배와 와인 제조가 이루어진 반면 메독(Médoc)은 17세기에 네덜란드인들이 지롱드(Gironde) 강 좌안을 개간한 다음에 포도 재배와 와인 제조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성벽과 주변에 강이 없는 점을 제외하면 생테밀리옹은 카르카손과 유사한 느낌을 준다. 넓은 평야로 둘러싸인 언덕 위에 생테밀리옹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생테밀리옹의 경사진 마을 모습 생테밀리옹이 언덕 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커다란 벽(Les Grandes Murailles) 마을 북쪽에는 '커다란 벽'이 서 있다. 원래는 이 자리에 13세기에 세워진 도미니크 수도원이 있었지만 백년 전쟁(133

프랑스 여행 갈 때 알아두면 좋은 프랑스어 단어 [내부링크]

프랑스에서 영어가 잘 안통한다는 속설이 있지만 관광지의 호텔, 식당, 상점 등의 직원분들은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한다. 그리고 최근에는 파파고, 구글 번역과 같은 번역기가 좋아서 언어적 장벽은 예전 보다는 많이 낮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사말과 몇 가지 단어를 알고 가면 프랑스 여행이 더 편해질 것이다. 인사말 인사말은 한국에도 많이 알려진 마법의 단어들이 있다. 소통은 영어로 하더라도 인사말 정도는 프랑스어로 하면 분위기가 좋아진다. 한국에서도 외국인 관광객이 와서 'Hello' 하는 것보다는 더듬거리더라도 '안녕하세요'하는 것이 좋아보이지 않는가! Bon jour(봉쥬흐) : 안녕하세요 Bon soir(봉쓰와)(17시나 18시 이후에 사용) : 안녕하세요 Merci(메흐씨) (beaucoup 보꾸) : (대단히) 감사합니다. Au revoir(오흐브와) : 안녕히 계세요 Bonne journée(본 주흐네) : 좋은 하루 보내세요 Bonne soirée(본 쓰와헤) : 좋은 저

보르도 여행 4 : 샤토 마끼 드 테름(메독 와이너리 투어) [내부링크]

메독(Médoc) 와이너리 투어 개요 <프랑스 와이너리 투어 예약 방법>에서 이야기했듯이 메독 와이너리 투어는 보르도 관광사무소를 통해 예약을 했다. 생테밀리옹은 마을을 중심으로 샤토들이 모여 있는 것과 달리, 메독 지역의 샤토들은 광활한 포도밭 사이에 드문드문 있는 경우가 많아 대중교통으로 가기는 매우 어렵다. 렌트해서 가는 방법도 있지만 그 경우에는 운전자는 시음을 못 하게 된다. 관광사무소를 통한 투어 프로그램이 가장 편하다고 할 수 있다. 메독 지역의 포도밭 우리가 선택한 종일 메독 와이너리 투어는 보르도를 출발해서 마고(Margaux) 마을을 갔다가 포이약(Pauillac)을 들리고 다시 마고를 거쳐 보르도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방문한 샤토는 샤토 마끼 드 테름(Château Marquis de Terme), 샤토 말레스카스(Château Malescasse), 샤토 시랑(Château Siran) 3곳이었다. 메독 와이너리 투어 경로 메독 와이너리 투어와 생테밀리옹 투어

보르도 여행 5 : 샤토 말레스카스(메독 와이너리 투어) [내부링크]

샤토 말레스카스 개요(Château Malescasse) 오-메독(Haut-Médoc) 지역의 중요한 마을인 마고(Magaux)와 생 쥘리앙(Saint Julien) 사이에 있는 라마르크(Lamarque)에 자리 잡고 있는 샤토이다. 처음 샤토가 만들어진 시기는 1824년이었고 그 후 여러 번 주인이 바뀌었다. 1992년 알카텔-알스톰(Alcatel-Alsthom)이 인수를 했다가 의료 사업 경영자 출신인 필리프 오스트리(Philippe Austry)가 2012년에 인수를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샤토 말레스카스 건물 전경 입구 옆에 있는 풍차 필리프 오스트리는 샤토 말레스카스 이외에도 프랑스 프로방스(Provence), 포르투갈, 이탈리아 토스카나(Toscana)에도 와이너리를 가지고 있다. 첫 번째 사진의 샤토는 1824년에 만들어진 건물인데 지금은 리모델링을 해서 건물을 통째로 숙소로 사용할 수 있다. 침대 4개, 화장실 4개를 갖추고 있으며 총 8명이 숙박을 할 수 있다.

툴루즈 여행 5 : 시내 구경 [내부링크]

<툴루즈 시청과 카피톨 광장> 툴루즈를 상징하는 사진을 꼽자면 언제나 가론(Garonne)강과 더불어 툴루즈 시청(Hôtel de Ville de Toulouse)과 그 앞에 있는 카피톨 광장(Place du Capitole)이 나온다. 카피톨 광장은 툴루즈의 중심이기 때문에 주변 명소를 보려다 보면 하루에도 몇 번이고 지나다니게 된다. 맑은 날의 카피톨 광장 비오는 날의 카피톨 광장 주변에는 카페, 식당 등이 즐비하고 그 주변으로 쇼핑가가 형성되어 있다. 툴루즈 시내 구경을 하기 좋은 꼬마 기차도 이 광장에서 출발한다. 툴루즈 시청은 프랑스 내에서도 아름다운 시청으로 손에 꼽히고 그 안의 내부 접견실은 화려해서 한 번은 봐야되는 곳이기도 하다. 행사가 있지 않는 한 13시부터 18시까지 개방을 해서 무료로 구경을 할 수 있다. 단, 테러 등의 이유로 엄격한 가방 검사를 받아야 한다. 가방 검사를 받고 들어가면 아래와 같은 중정과 회랑이 눈앞에 펼쳐진다. 중정에는 18년간 툴루즈 시

툴루즈 여행 6 : 산책 그리고 트램 타기 [내부링크]

여행을 가면 아무런 목적지 없이 대중교통을 타거나 산책을 하곤 한다. 아무 생각 없이 트램과 버스가 데려다주는 곳을 가거나 경치가 좋은 곳을 산책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여행의 즐거움이다. 특히나 트램은 한국에서 타기 쉽지 않은 교통수단이기 때문에 유럽 도시에 갈 때에는 꼭 타보려고 한다. 가론(Garonne) 강 산책 가론 강은 툴루즈와 보르도를 만든 강이라고 할 수 있다. 파리의 센 강도 아름답지만 개인적으로는 툴루즈 가론 강도 그에 비견할 만큼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트램 역의 시발점인 법원(Palais de Justice)에서 가론 강변을 따라 걷다가 퐁 네프(Pont neuf)를 건너 남쪽(우안)으로 갔다가 다시 생 피에르(Pont Saint-Pierre) 다리를 건너 다시 강 북쪽(좌안)으로 왔다. 카피톨 광장 주변의 도로가 매우 좁은데 비해 법원 앞의 길은 매우 넓었다. 차도보다는 인도가 넓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또한 트램이 다니는 길에 녹색 잔디가 깔려져 있어 더욱 거

툴루즈 여행 7 : 식당과 초콜릿 맛집 [내부링크]

Chez Jeannot Fruits de mer : 해산물 전문식당 카르카손에서 비록 잘하는 식당은 아니었지만 카술레를 맛보았기 때문에, 툴루즈 시내에서는 해산물을 먹어 보기로 했다. 검색을 해보니 평점이 좋은 Chez Jeannot가 보였다. 우리가 묵은 ibis style 호텔과 카피톨 광장 중간에 있어 지나다니가 본 식당이었다. 점심으로 예약을 한 다음 찾아갔다. 여기는 식당과 해산물 재료를 파는 가게를 같이 운영하고 있는데 식당이 아니라 가게로 들어가는 조그마한 실수를 하기도 했다. 식당 외관 전채, 메인, 디저트로 구성된 점심 특선 코스 요리(1인당 22유로)를 주문했고 전채로는 에스카르고와 절임 생선 요리를 선택했다. 프랑스산 생맥주와 하우스 와인으로 화이트 와인을 한 잔 주문했다. 메뉴판 에스카르고와 생선 절임 메인으로는 감자튀김이 겨들여진 홍합찜과 오늘의 요리를 주문했다. 오늘의 요리는 파스타가 함께 나오는 생선구이가 나왔다. 홍합찜 구운 생선 홍합찜은 파리나 니스에서

보르도 여행 : 정보 및 계획 [내부링크]

※ 기존 포스팅이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검색노출이 안되어 일부 글을 수정하여 다시 올립니다. 보르도(Bordeaux) 소개 부르고뉴와 더불어 프랑스 와인(포도주)의 쌍벽을 이루고 있는 보르도는 누벨-아키텐(Nouvelle-Aquitaine) 레지옹(région)과 지롱드(Goronde) 데파르망(département)의 주도이다. 누벨 아키텐과 보르도 2020년 기준으로 인구는 보르도 자체로는 29만 명(프랑스 9위), 광역을 포함하면 99만 명이다. 가론(Garonne) 강이 보르도를 관통하고 있으며, 도르도뉴(Dordogne) 강과 합쳐져 대서양으로 흘러가는 거대한 지롱드(Gironde) 강을 만든다. 이런 지리적 환경이 보르도를 무역 항구로 번성하게 만들었다. 보르도의 중심인 부르스 광장(Place du Bourse) 보르도의 별칭은 <작은 파리(Petit Paris)>이다. 파리를 상징하는 푸른 지붕 건물들은 보르도에서도 볼 수 있다. 다만 파리 건물들은 7층이라면 보르도

프랑스 와이너리 투어 예약 방법 : 보르도, 생테밀리옹, 꼬냑, 샴페인 [내부링크]

34일 동안 프랑스에서 12개의 샤토, 꼬냑 회사, 샴페인 회사를 다녀왔다. 이를 어떻게 예약했는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개인 경험에 바탕을 두었다는 점과 프랑스에서만 적용된다는 사실을 미리 밝혀 둔다. 1. 관광사무소(Office de Tourisime)를 통한 예약 프랑스 도시들에는 관광사무소가 있고 다채로운 투어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이 중에서 와인으로 유명한 지역, 디종, 보르도, 랭스 등은 와인 투어를 별도의 섹션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보르도 관광사무소 홈페이지의 Discovering vineyard라는 항목으로 들어가면 아래 사진처럼 다양한 와인 투어를 선택할 수 있다. 보르도 관광사무소 와이너리 프로그램 프라이빗 투어에서 그룹 투어까지도 가능하고, 사진에는 잘 안 나오지만 메독((Médoc)과 생테밀리옹(Saint-Émilion)을 함께 가는 투어도 있다. 또한 시간도 하루 종일, 반나절로 자신의 상황에 맞는 투어를 고를 수 있다. 투어 외에도 와인 바 방문과 같은 다른

보르도 여행 1 : 샤토 파비 방문(생테밀리옹 와이너리 투어) [내부링크]

샤토 파비(Château Pavie)의 간략한 역사 샤토 파비를 포함한 인근 지역에서 포도 재배가 시작된 것은 로마 제국 시절인 4세기 무렵이다. 파비(Pavie)라는 이름은 복숭아 과수원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다. 샤토 파비가 중요한 와이너리가 된 시기는 18세기였고, 19세기에 이 지역을 소유한 페르디낭 부파르(Ferdinand Bouffard)가 '샤토 파비'라고 이름을 지었다. 프랑스의 자수성가 백만장자인 제라드 페르스(Gérard Perse)와 샹탈 페르스(Chantal Perse) 부부가 1999년에 3,100만 유로에 샤토 파비를 인수하면서 샤토 파비는 생테밀리옹 최고 샤토 중의 하나로 거듭나게 된 계기를 마련한다. 이들 부부가 인수한 후 여러 개선 조치를 통해 2012년 생테밀리옹 와인 최고 등급인 프리미어 그랑 크뤼 클라세 A(Premier Grand Cru Classé A)로 승격한 것이다. ※ 생테밀리옹 와인 등급 체계 생테밀리옹 와인 등급 체계는 보르도 보

툴루즈 여행 1 : 에어버스 투어와 항공박물관 [내부링크]

2023.3.11. <에어버스 투어 예약> 에어버스 투어인 Let’s Visit Airbus는 툴루즈와 함부르크에 있다. 툴루즈에 있는 에어버스 투어를 위해서는 Manatour(http://billetterie.manatour.fr/gb/)를 통해서 예약을 해야 한다. 툴루즈가 스페인과 가까이 있다 보니 홈페이지 지원 언어는 프랑스어, 영어 이외에 스페인어가 있다. 하지만 스페인어 투어는 없다!!! 위 사진의 에어버스 예약을 누르면 유럽 연합 소속 국민 여부를 물어보는 페이지가 나온다. 여기서 ‘아니오’를 누르면 투어 참가 인원과 날짜를 선택할 수 있다. 예약일로부터 2주후까지만 예약이 가능하다. 툴루즈가 외국인 관광객이 아주 많은 도시가 아니라서 그런지 영어 보다는 프랑스어 투어가 많다. 예약을 하면 예약확인증이 이메일로 온다. 투어 시작 30분전에 여권을 지참하고 오라는 안내가 있다. <에어버스 가는 법> 에어버스 투어 모임 장소는 에어버스 옆에 있는 항공박물관(Musée Aer

툴루즈 여행 2 : 카르카손 여행 제1부 [내부링크]

2023.3.12.일. <카르카손(Carcassonne) 소개> 카르카손은 중세 성채가 있는 곳이라서 작은 도시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인구가 4.7만명이 되는 꽤 규모가 되는 도시이다. 옥시타니(Occitanie) 레지옹(région) 안에 있는 오드(Aude) 데파르망(département)의 수도이다. 여기에 국제 공항까지 있다. 카르카손 공항에는 영국, 벨기에, 아일랜드, 이탈리아, 포르투칼 5개국, 런던과 포르투를 포함한 10개 도시에 비행기가 운행하고 있다. 대서양과 지중해를 연결하는 미디 운하(Canal du Midi)가 도시를 통과하고 있으며 오드(Aude) 강도 지나고 있어 도시 전체가 시원한 느낌을 준다. 카르카손 역 앞에 있는 미디 운하 툴루즈에서 기차를 타는 것이 가장 카르카손을 가는 쉬운 방법이다. TGV를 포함해서 Intercitié, TER 등이 다양한 열차가 있지만 가장 저렴한 TER를 추천한다. TER는 주로 1시간에 1대 정도로 운행을 한다.

툴루즈 여행 3 : 카르카손 여행 제2부 [내부링크]

카르카손 성의 위용과 아름다움은 압도적이지만 도시 자체만으로도 카르카손은 매력 있는 도시이다. 깨끗하고 아름답게 정돈된 프랑스 소도시의 전형이라고 할까? 성에서 바라본 카르카손 도심 퐁 비유를 중심으로 펼쳐진 오드(Aude)강의 풍광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2017년에 갔던 콜마르(Colmar)의 운하에 비견할 만 했다. 카르카손에서도 크루즈 등의 배를 타는 투어가 있었지만 시간 부족으로 이용하지 못한 것이 무척이나 아쉬웠다. 한국어로 ‘오래된 다리’라는 퐁 비유(Pont vieux)는 14세기에 만들어진 다리이며, 1926년에 역사 유적으로 지정되었다. 건설 이후 여러 번 수리를 거쳤지만 예스러움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다리이다. 강가에서 바라 본 퐁 비유 모습 퐁 비유 다리 위 모습 카르카손 성으로 가는 방향을 기준으로 퐁 비유에서 왼쪽을 보면 퐁 네프(Pont neuf), 말 그대로 새로운 다리가 보인다. 퐁 비유에서 바라 본 퐁 네프 다리 위에서 오른쪽을 보면 카르카손 성쪽

툴루즈 여행 4 : 카르카손 식당, 아이스크림 등 [내부링크]

원래는 구글 평점이 높은 식당을 조사해서 갔다. 하지만 카르카손 성을 둘러보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조사한 식당들은 이미 브레이크 타임이어서 갈 수가 없었다. 영업을 하고 있는 식당 중에 어디가 괜찮을까 하고 돌아다니다가 건물의 외부에 있는 계단을 통해 2층에 자리잡은 식당을 발견하게 되었다. 3월임에도 카르카손에는 관광객이 많아 2층이 좋을 것 같아 여기에서 식사를 하기로 결정했다. <Restaurant le Bellevue> 식당 이름은 번역하면 '전망이 좋은 식당'이다. 이름 답게 전망은 괜찮았다. 특히나 오후 들어 하늘이 맑아지면 파란하늘을 볼 수 있었고 뷰를 즐기며 식사를 하는 손님이 꽤 되었다. 카르카손 요새에서 본 사람들도 자리를 잡고 있었다. 우리는 시드르(Cidre)와 적포도주, 샐러드, 햄치즈 갈레트, 양파스프, 카슐레, 오늘의 디저트를 주문하였다. 양파스프는 약간 짭쪼름하였으나 먹을 만하였다. 샐러드와 햄치즈 갈레트도 무난한 맛이었다 까슐레는 돼지고기와

어린이날 기념 : 생텍쥐페리의 명언 [내부링크]

모든 어른들도 처음에는 어린이였다. (하지만 그것을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Toute les grandes personnes ont d'abord été des enfants, (Mais peu d'entre elles s'en souviennent.) Antoine de Saint-Exupéry, Le Petit Prince (Paris : Gallimard), p. 5 비가 와서 많은 어린이들이 상심이 클 것 같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어른들이 자신들의 어렸을 때를 기억하며 어린이들 입장에서 생각하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한다. 리옹(Lyon)에 갔을 때 찍은 어린왕자와 생텍쥐페리의 동상

덴하그(Den Haag) [내부링크]

2023.3.8. 헤이그(Hague)라는 영어식 이름이 유명한 덴하그(Den Haag)는 암스테르담으로부터 64km 떨어져 있다. 공식적인 수도는 암스테르담이지만 왕궁을 비롯해서 주요 정부 기관들이 덴하그에 자리를 잡고 있어 실질적인 수도이다. 암스테르담이나 스키폴 공항에서 덴하그로 가는 방법은 인터시티(Intercity) 열차를 탑승하는 것이다. 직통 기준으로 암스테르담에서는 1시간, 스키폴 공항에서는 30에서 40분 정도 소요된다. 북해에 접해 있어 바다 구경을 할 수 있고 왕궁 등 소소한 볼거리가 많은 도시이다. 하지만 두 가지 점 때문에 덴하그를 천천히 볼 기회가 없었다. 우선은 네덜란드 3월 초 날씨가 눈이 내릴 정도로 춥고 바람이 불어 밖에 돌아다니기가 힘들었다. 더 큰 문제는 영국 항공이 수하물을 늦게 배송하는 바람에 이 문제를 해결하느라 스키폴 공항에 2번이나 왔다갔다 해서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했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로 유명한 마우리츠하위스(Mauritshui

암스테르담 1 : 하이네켄 박물관 [내부링크]

2023.3.9. <하이네켄 박물관(Heineken Experience> 위치 하이네켄 박물관은 암스테르담 중앙역에서 지하철로는 8~9분, 트램으로는 14분 정도 떨어져 있다. 관광을 와서는 도시 풍경을 볼 수 있는 트램을 타는 것이 좋지만 우리는 시간 관계상 지하철을 탈 수밖에 없었다. 이점은 조금은 아쉬웠다. 지하철은 Vijzelgracht에서 내리면 되고 트램은 Amsterdam, Marie Heinekenplein에서 내리면 된다. 트램역은 역 자체에 하이네켄 이름이 들어가 있다. 지하철역에서 내려서 보면 암스테르담 강 지류 옆에 있는 하이네켄 박물관이 바로 보인다. <하이네켄 투어 종류> 하이네켄 박물관 공식 홈페이지에서 예약할 수 있는 투어는 6가지이다. 종류 투어 내용 금액 Rock the City - Heineken Tour + Canal cruise 박물관 셀프 투어(1시간 30분) 크루즈 가이드 투어(45분) 맥주 2잔 시음 32.5유로 Heineken Tour 박

암스테르담 2 : 반 고흐 미술관 [내부링크]

2023.3.9. <반 고흐 미술관(Van Gogh Museum)> 가는 길 반 고흐 미술관(Van Gogh Museum)은 하이네켄 박물관으로부터 약 950m 정도 떨어져 있어 걸어서 12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날은 손이 시릴 정도로 차가운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고 있어 걸어가는 길이 쉽지는 않았다. 가는 길에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Rijksmuseum)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일정에 여유가 있었다면 관람할 수 있었을텐데..아쉬운 마음을 담고 발걸음을 옮겼다. 반 고흐 미술관이 저 멀리 보이는데 건물 밖으로 길게 늘어선 사람들의 줄이 보였다. 가까이 가서 보니 당일 현장 구매하여 입장하려는 사람들의 대기 줄이었다. 우리가 반 고흐 미술관에 도착한 시간은 13시30분경이었는데, 14시30분 입장권을 보여주자 입장시켜 주어 1시간 먼저 들어갈 수 있었다. <반 고흐 미술관> 감상 2023년은 반 고흐 미술관이 개관한 지 50주년이 되는 해이다. 2023년 5월12일부

툴루즈(Toulouse) 여행 : 개요 [내부링크]

툴루즈는 프랑스에서 파리, 마르세유, 리옹 다음으로 큰 도시로 인구는 49.8만명, 주변인구를 포함하면 104.8만명이다. 옥시타니(Occitanie) 레지옹(région)의 주도이기도 하다. 옥시타니와 툴루즈 툴루즈의 별칭은 장미빛 도시(La ville rose)인데 붉은 점토로 만든 벽돌로 건물을 만들어 도시가 장미빛이 나기 때문에 붙여졌다. 보르도(Bordeaux)까지 이어지는 가론(Garonne)강이 도시 가운데를 관통하고 있고 지중해와 대서양을 연결하는 미디 운하(Canal du Midi)도 지나가고 있다. 1681년에 완공된 미디 운하는 길이가 240km에 달한다. 현대에 들어 더 이상 화물 운송이라는 경제적 역할은 하지 않지만 1996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선정되었다. 가론 강에서 바라본 툴루즈 전경 역사적으로는 5세기 서고트(Vishgoth) 왕국의 수도였고 아키텐(Aquitain) 왕국 수도를 거쳐 툴루즈 백작령(Comté de Toulouse, 778~1271)의

프랑스 여행 번외편 : 기내식 이야기 [내부링크]

여행 기간 동안 3종류의 항공사를 이용했다. 암스테르담으로 갈 때는 아시아나를 타고 런던에서 영국항공(British Airways)으로 갈아탔다. 암스테르담에서 툴루즈로 갈 때는 KLM을 탔고 한국으로 돌아올 때는 다시 아시아나를 타고 돌아왔다. 아시아나 기내식은 워낙 블로그나 유튜브에서 리뷰가 많아 또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영국항공과 KLM은 비행시간이 짧아서 기내식이 없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음식이 나왔고 그 맛도 괜찮아서 잠깐 리뷰를 해보고자 한다. <2023. 3. 7. 영국항공 기내식> 영국항공으로 런던 히드로 공항에서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까지 실제 비행하는 시간은 40여분이었다. 이륙과 착륙하는 시간을 빼면 더 짧았다고 할 수 있다. 그 짧은 시간에 기내식이 제공되었고, 숙련된 솜씨로 메뉴를 주문받고 기내식을 제공하는 영국항공의 승무원의 빠른 손놀림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런던 공항 직원들이 영국항공 승무원의 손놀림을 본받았다면 우리 짐이 늦게 오는 불상사가

2023년 프랑스 여행 개요 [내부링크]

<서언> 3월 7일부터 4월 9일까지 34일간 네덜란드와 프랑스 여행을 다녀왔다. 이번 여행의 주제는 크게 아래와 같은 4가지였다. 첫째는 생명의 물(알코올) 여행이었다. 암스테르담의 하이네켄 박물관(Heineken Experience)을 시작으로 해서 랭스(Reims)의 샴페인 업체(Maison de Champagne)인 메르시에(Mercier)까지 12개의 샤토(château), 꼬냑 업체(Maison de Cognac), 샴페인 업체를 방문하는 것이었다. 둘째는 프랑스 소도시 여행이었다. 큰 도시에 거점을 잡고 카르카손(Carcassonne), 아르카숑(Arcachon), 루앙(Rouen), 생 말로(Saint-Malo) 등의 작은 도시를 당일 일정으로 둘러 보는 것이었다. 셋째는 인상파 미술 기행이었다. 인상파 작품이 많은 미술관이나 그 화가들이 남긴 자취를 따라가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암스테르담에 있는 고흐 미술관(Van Gogh Museum), 알비(Albi)에 있는 툴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