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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보금자리 변천사(눈물주의) [내부링크]

대학교 3학년 때 통학이 힘들어서 자취가 너무 하고 싶었다. 혼자 마음먹고 처음 계약한 월세방은 학교 정문 근처에 위치한 반지하 원룸이었다. 당시 보증금 200에 월 20이었다. 그쪽 시세 치고 저렴했기에 방 나온거 보고 바로 계약했었다. 겁도없이 부동산도 안끼고 그냥 집주인이랑 직접 계약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계약서가 효력이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여대생의 방이었다는게 믿기는가. 지하라서 빛도 안들어왔고.. 창문이 주차장 쪽이라 매연냄새 자주나고 방에 먼지도 잘 쌓였다. 무슨 징그러운 땅거미도 자주 나오고.. 슬리퍼로 때리면 노란즙이 터져 나오는.. 여기까지만 설명하겠다. 어떻게 살았나 싶은데, 그땐 그래도 내 방이라고 좋았던 것 같다. 대학 졸업 후 취업 준비기간, 내 수중에는 알바비와 용돈을 열심히 모아 500만원 안되는 금액이 있었다. 당시 서울에 은행 콜센터에 취직을 하고 이제 방을 잡아야 하는데, 집에서 지원해줄 수 없는 형편이었고 원룸산다쳐도 어차피 보증금 500만

입행한 사회초년생의 이야기 (2) 퇴사엔딩 [내부링크]

업무 파악에 급급했던 입사 초기에는 다른 것들이 눈에 보이지 않았다. 정신없이 일하다가 밥먹고 와서 또 집중해서 일했다. 고객 응대를 위해서는 내가 담당한 상품 외에도 다른 업무에 대해서도 지식이 있어야만 수월했다. 여유롭다는 것을 느끼기까지 3년정도 걸린 것 같다. 그 뒤에는 전반적으로 돌아가는 흐름도 보이고, 그때 부턴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 시선이 자연스럽게 돌아갔다. 그때 친분 많이 쌓고, 내 가족보다 더 친하게 지내는 동료들이 생겼던 것 같다. 그런가 하면 어디든 맘에 안드는 사람도 있기 마련. 당시 내가 있던 팀은 일이 편하다는 오해를 받고 있었다. 팀장이 몇번씩 바뀌다보니, 나중 팀장은 정말 우리가 하는 일이 뭔지도 모르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주변에서 바라보는 우리팀에 대한 이미지를 대변해주기는 커녕 한가롭기 그지없는 태평한 곳으로 만들어버렸고, 육아휴직을 앞둔 분들 결혼을 앞둔 분들 등등.. 일보다는 개인 가정사가 중요한 분들이 이팀으로 오고싶어 혈안이 되었다. 아

입행한 사회초년생의 이야기 (1) [내부링크]

2015년 12월. 나에게는 뜻깊은 해였다. 신한은행에 입행한 시기는 혹독하게 추운 겨울 날씨였지만 나에게는 그 어느 때 보다도 포근하고 푸근했다. 2014년 9월, 나는 코스모스 졸업 후 충북지역 은행 공채 지원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미 새마을금고는 면접까지 통과해서 발령을 기다리고 있었으나 거긴 가지 않겠다 결정을 내린 상태였다. 그런 와중에 아버지가 대장증후군으로 충북대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당시 병간호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나뿐이었다. 취업이고 뭐고, 그때는 매일 밤이 고비였던 아버지 옆에서 열심히 병간호를 했다. 아버지가 퇴원하던 날 농협 채용 마지막 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부랴부랴 지원서를 작성해 직접 제출하러 갔지만 접수일보다 하루가 지난 날이었다. 공정성에 어긋난다며 지원서 제출을 거절당했다. 당연한 결과였다. 그때는 너무 아쉬운 마음에 다급한 마음에 그랬던 것 같다. 아버지가 원망스럽기도 했다. 꼭 중요한 날 술먹고 엄마랑 싸운다던지, 끊지 못하고 퍼마시던

나의 대학시절 이야기 (2) [내부링크]

2학년 1학기로 복학하자마자 나는 일단 교양과목들을 최대한 들었다. 전과 하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었다. 1학년 때 몰려다녔던 독일어과 친구들과도 휴학기간 동안 소원해졌기 때문에, 나의 전과준비는 매우 수월했다. 독일어과 친구들 중에서 깊은 속얘기를 나눠본 적 없는 친구지만 나처럼 1년 휴학하고 돌아온 친구가 있었다. 그리고 애초에 공무원 시험 준비하느라 학점이고 대학생활이고 쿨하게 생략하고 도서관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쏟은 친구도 한명 있었다. 그 친구는 전공책 들고 있는 걸 본 적이 없었다. 항상 공무원 시험 기출문제 풀고 있던 기억만 난다. 독일어과 자발적 아싸가 된 우리들은 뭉쳐다녔다. 각자 자기 고민들, 생각들을 나누며 졸업의 순간까지 묵묵히 걸어갔다. 전과를 한 후에도 나는 학우들과의 친목다지기보다 혼자 도서관에서 책 읽는 것을 좋아했다. 그때의 습관은 사회인이된 지금까지도 남아서, 지금도 회사에서 가끔은 점심시간에 혼자 책을 읽곤 한다. 나는 별로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 것

나의 대학시절 이야기 (1) [내부링크]

수험생활 3년 동안의 결과가 결정되는 수능 날. 긴장을 많이 한 나는 엄마가 정성스레 싸주신 도시락을 먹고 급체를 했고, 그 상태로 시험을 쳤다. 좋지 못한 컨디션에서 결국 좋지 못한 시험결과가 나왔다. 수시 많이 쓸 걸 하는 후회를 하며 찰나의 순간 재수를 고민했다. 그러나 내 성격상,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타이밍이 그대로 보내줘야 하는 타이밍이라면 그냥 흘러가게 냅둬버렸다. 그렇게 나는 충북에 있는 국립대에 진학했다. 그런데 OT며 MT며 새내기들을 설레게 하는 이벤트에도 나는 그닥 신나지도 설레지도 않았다. 거기서 만난 동기가 그렇게 좋지도 않았다. 아마 내가 전과할 것임을 입학한 순간부터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것일까. 나는 시금털털한 새내기로 대학생활 1년을 채우고 고민없이 휴학을 해버렸다. 그리고 무조건 사회로 그냥 뛰어들기로 했다. 답답해서리.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관심에도 없는 독일어를 점수 맞춰 들어오느라 일년이나 공부했다. 이게 맞는지도, 내가 좋아하지도

견제하는 사람의 심리 - 직장생활 편 [내부링크]

내 MBTI는 INFJ이다. 어릴 때부터 이해하기 힘든 사건이나, 사람의 행동에 대해서 왜 저런 꼬락서니가 벌어졌을까? 저 사람은 왜 저따구로 행동하는 것일까? 하며 오랜 시간 동안 자주 그런 일이나 그런 사람들을 고찰해왔다. 나의 이런 특성은 사실 함께 살기 까다로웠던 우리 부모님 눈치 보는데서부터 발달된 것 같다. 아버지 숨소리만 들어도 기분이 나쁜지 좋은지 파악할 수 있었고, 어머니 두부 써는 소리만 들어도 역시나 기분의 고저를 알 수 있었다. 어쨌든, 살면서 내가 편해지기 위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발달된 이 감각은 내가 본격적인 사회생활 시작하면서 나를 편하게 할 때도 있었지만, 대게는 불편하게 다가왔다. 일단 다른 사람 기분을 파악하려고 나도 모르게 눈치를 보게 되고, 그 과정에서 소모되는 에너지가 상당하다. 이게 상성이 맞으면 이런 내 성격을 오히려 좋아해 주고 친밀해지는 관계가 생기기도 하는데, 어떤 사람들은 나를 좀 기분 나쁘게 생각하기도 하는 것 같다. 쟤 다 알면

견제하는 사람의 심리 - 친구관계 편 [내부링크]

2. 친구관계에서의 견제 친구관계에서의 견제도 둘로 나뉘는데, 일단 둘 사이의 견제라면은 거의 학생일 때 만난 친구인데 나이도 먹고 각자 생활하면서 달라지는 사회적 조건과 지위에서 경쟁심이 발동했을 확률이 크다. 학생 때 고만고만해서 별생각 없이 시시덕거리던 친구가 점점 나보다 잘 사는 것 같다? 갑자기 그 친구한테 말이 예쁘게 안 나간다. 물론, 나는 내 주변 사람이 잘되면 축하해주고 같이 기뻐해준다. 견제를 할 이유를 모르겠다. 내 지인이 잘 되면 나한테 밥 한 끼 더 사줄 수 있는 거고, 선물 줄 수도 있는 건데. 못 사는 것보단 당연히 잘 사는 게 낫지 않나? 합리적으로 따져보면 이게 맞는 발상이다. 아무튼, 친구가 나를 질투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괜히 나 꼽주는 말하고, 돌려 까기 한다? 그러면 한 번은 기분 나쁘다고 말은 해보는 게 좋다. 친구가 쿨하게 사실 너가 부러웠어. 미안했어.라고 한다면 다행히 그 우정 컨티뉴 가능한 거고.. 빼액! 하면서 객기 부린다면 쿨하게 굿